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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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흉기란 남의 살에 박혀 있는 순간을 제외하곤 언제든 나 역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 / p.8

어렸을 때 곰인형에 큰 관심을 두는 친구들과 달리 오히려 로봇 같은 장난감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애착 인형 하나 정도는 두고 산다던데 나에게는 그 자리를 다른 인형들이 채웠다. 그것도 아버지께서 취기에 뽑아 오신 인형 뽑기 기계에서 나오는 키링 크기의 캐릭터 인형들이었던 것 같다.

곰인형에 크게 감흥이 없는 편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곰인형이 귀엽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당시 제주도 테디베어 뮤지엄이라는 곳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 나라의 상징되는 랜드마크들을 테디베어와 함께 전시를 해 두었는데 굉장함을 느꼈다. 그 전체가 방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벌써 십 년이 지나 삼십 대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기억이 선명하다.

이 책은 조예은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대놓고 팬심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읽을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되는 작품들 중 작가님의 작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쇼트 시리즈 단편집이 그랬고, 그 이후에 보았던 청년 주제의 앤솔로지 작품이 그랬다. 특히, 안전가옥 출판사와 조예은 작가님의 조합은 안 보고 그냥 넘길 수가 없었기에 이번 신작을 누구보다 기다렸다. 거기에 단편은 종종 읽었지만 장편은 처음이기에 기대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영이라는 이름의 여자로, 생계형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이다. 화영에게 집을 제공하고 있지만 갈취와 협박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영진은 낚시를 통해 화영을 어둠의 세계로 끌어당기고 있다. 화영은 영진에 의해 사기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신분을 속이면서 부잣 동네에서 사모님께 착실한 크리스천을 빙자해 돈을 받고 있기도 하다.

어느 날, 누가 봐도 버린 것으로 보이는 곰인형 하나를 손에 얻은 화영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을 해하려던 남자를 죽이는 곰인형을 말이다. 그리고 화영을 팔아넘기려고 했던 영진에게서 구해주기까지 한다. 곰인형은 도하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청소년이 빙의된 것이었다. 화영은 과거 곰인형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해 도하를 데리고 다니고, 도하와 화영은 복수를 위한 준비를 한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아동 학대에 대한 부분이다. 작품 안에서 도하라는 인물은 아버지의 분노 해소 수단으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형이자 큰아빠에 대한 열등감을 도하로 풀었으며, 이는 단지 공부를 강요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신체적, 정신적인 부분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났는데 이러한 지점이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슈들과 연관이 되어 있음을 느꼈다. 자녀는 부모들의 꿈이 아니며, 자녀를 하나의 종속적인 수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도하에게 저지르는 가시적인 학대뿐만 아니라 사상 자체도 하나의 학대라고 보여졌다.

두 번째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에 대한 부분이다. 리뷰를 읽는 독자들 입장에서 이 생각은 의문을 가질지 모르겠다. 도하의 큰아빠가 가진 감정들을 보고 부모의 사랑을 느꼈다. 누구보다 아들을 끔찍하게 여겼던 큰아빠가 불의의 사건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정적으로 도하가 곰인형에 빙의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큰아빠의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부모의 사랑이 삐뚤어지게 드러난 하나의 극단적인 예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섬뜩함보다는 귀여움이 먼저 느껴졌던 표지와 다르게 내용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곰인형이 사람을 죽인다는 설정 자체가 무섭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화영과 도하가 겪었던 상황이 더욱 현실성 있게 다가와서 그게 더욱 잔인했다. 두 주인공에게도 잔인했고,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세계관 자체가 잔인하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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