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 : 세 번의 봄 안전가옥 쇼-트 20
강화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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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썼다. 크리스마스였으니까. / p.8

이 책은 강화길 작가님의 소설집이다. 주변에서 많은 추천을 받았지만 이렇게 단행본으로는 처음이면서 작품으로만 따지면 두 번째로 선택한 책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최고라고 생각하는 수상집이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좋아하는 취향의 작가님들의 작품들과 더불어,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작가님의 <음복>이라는 작품이 꽤 인상 깊게 남았다. 올해 상반기에 우연히 SNS에서 작가님의 소설집이 출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내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바로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총 세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작품인 <깊은 밤들>은 화자와 그녀의 어머니, 딸 정민이에 이르기까지 삼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자의 어머니는 화자에게 좋은 어머니는 아닌 듯한 느낌이다. 학창시절에도 잘한 것보다는 그 안에서의 실수를 먼저 언급하면서 다그치기 바빴으며, 정민이가 쓴 편지에 맞춤법이 틀리자 전화로 교육에 대한 잔소리를 늘어놓는 등 어떻게 보면 사랑을 주지 않았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민이에게 이를 고스란히 퍼붓는다. 어느 날, 정민이를 잃어버리면서 화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두 번째 작품인 <비망>은 한 여성의 첫 해외여행 이야기이다. 화자는 마치 그 여성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첫 여행을 관찰하는 듯하다.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사람과의 교류가 없던 그녀에게 여행은 그야말로 헤쳐나가야 할 미션의 연속이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었겠지만 남편과 이혼 후 딸을 키우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직장생활했고, 이를 느낄 보람도 없이 병이 찾아왔다. 그러다 또 그녀를 힘들게 할 일이 벌어졌다.

세 번째 작품은 <산책>은 종숙과 영애라는 인물의 우정과 그를 지켜보는 영애의 딸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인댄스 교실에서 만난 종숙과 영애는 각별히 친해지는 사이가 된다. 특히, 종숙은 억척스럽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 위주로 생각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듯했다. 평생 미안하다는 말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사업에서 족족 실패를 했던 인물이어서 어머니는 종숙을 앞에 두고 아버지 흉을 그렇게 보았다고 했다. 영애는 그런 종숙의 이야기를 듣고, 딸에게 전달해 주기도 한다.

세 작품 모두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비망>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읽으면서 나의 어머니의 경우로 상상했다. 특히,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는 점에서 넓은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밟고 상하이로 떠나는 과정 자체가 마치 어머니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여행을 좋아하시다 보니 과연 딸인 나 또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사라지고 혼자가 된 어머니께서 맞이하게 될 상황들이 딱 이 그림이었다. 어머니의 허둥지둥 순탄하지 않았던 여행 이야기에 마음이 아려왔다. 결말은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인상적인 작품을 제외하고 읽을 때보다 덮고 나니 오히려 여운이 확 와닿았던,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집과 다르게 묘한 느낌을 받았다. 나 역시도 딸의 입장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보니 자녀가 없어서 첫 번째와 세 번째 작품의 이야기들이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 점에서 단순하게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그렸던 <비망>이 여운이 남았다. 오히려 그 두 작품은 가볍게 읽혀서 안전가옥 출판사 쇼트 시리즈의 매력이었던 기분 환기 수준으로 생각했는데 자기 전에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상기시키는 과정에서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훅 들어왔다. 다시 일어나 두 작품을 재독을 하게 될 정도였다.

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음복>이 어머니와 아들과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은 전부 어머니와 딸, 또는 할머니와 손녀 이야기를 다루어서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가족 사이에서 느끼는 애정뿐만 아니라 증오, 더 나아가 아슬아슬 줄타기와 같은 미묘한 감정까지도 섬세하게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더욱 강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자녀를 두고 있는 어머니 입장의 독자라면 더욱 큰 공감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강화길 작가님의 특유한 매력이 무엇보다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읽은 이후 곧 아이를 맞이할 지인에게 꼭 선물로 주고 싶어 구매하게 된 책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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