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복수를 하지 안전가옥 오리지널 25
범유진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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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맡길 사람이 있단 건 좋은 일이지. / p.12

복수심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악한 마음이라고 보는 편이다. 상대방이 먼저 때리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기에 맞는 입장에서는 복수 그 자체가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악한 마음이라는 게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나조차도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어떻게 보면 본능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무언가를 가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게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책은 범유진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벌써 단행본으로만 세 번째가 된다. 단편집이었던 <아홉수 가위>라는 작품을 너무나 인상 깊게 읽었다. 아무렇지 않게 장난 반 농담 반으로 했었던 아홉수라는 주제를 가지고 힐링을 선사해 준 소설이어서 지금까지도 깊이 각인이 되었다. 또한, 이후에 읽었던 <카피캣 식당>도 흥미로운 소재였기에 이번 장편소설 역시도 걱정보다는 설렘이 컸다.

소설은 염소클럽이라는 한 단체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단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도 꽤 승승장구 금전적 지원을 해 주는 대기업 총수가 있고, 실력 있는 변호사가 든든하게 서포트를 해 주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의뢰인의 복수를 대신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을 죽이지는 않는다. 단지 의뢰인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것이 비록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염소클럽에는 하이하라는 이름의 고등학생, 경호원 진선미, 체육 유망주였던 김해찬이 속해 있다. 서로 각자의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담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소설의 내용은 의뢰인들의 복수, 이들의 사연들과 복수하는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한 형사의 시점으로의 사건 일지 등이 전개된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었던 작품이었는데 중반에 이르러 개인사들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어서 당황스러웠다. 맨날 부인에게 꼬박꼬박 식사 세 끼를 챙겨서 먹어야만 하는 가부장적 남자의 이야기가 그랬다. 그러다 각각의 사건들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는데 이는 두고두고 생각할 법한 내용이어서 이 지점은 여운이 크게 남았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술술 읽는 게 작가님 작품의 매력이다 보니 느꼈던 분위기 반전조차도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딱 하나의 지점을 깊이 생각했다. 희생양이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영어로 "Scapegoat"라고 하는데 이를 원래는 속죄의 염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된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염소클럽 역시도 이 단어에서부터 유래가 되어 만들어진 단어인데 묘하게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무언가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등장했던 김꽃님의 경우에만 보더라도 가정의 희생양으로서 남편의 폭언과 자녀의 무관심 안에서 아내 또는 엄마의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었다. 그밖에도 자신의 이미지를 내세우기 위해 자녀들을 이용한 정치계 인물이 있었으며, 염소클럽의 사람들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지점에서 보았을 때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묘하게 무겁게 내리앉은 느낌을 받았다.

그밖에도 작품에서 등장하는 사회적 이슈들이 시선에 두고두고 닿았다. 김꽃님의 사례에서 보는 가부장 제도에 대한 이야기, 하이하가 염소클럽에 오기 전 마마로부터 받았던 아동 학대, 묵인하는 의료 사고 등 지금 뉴스를 틀어도 나올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더욱 무겁게 활자를 읽히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복수라고 해서 그렇게 통쾌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작품이었다. 오히려 싱겁다고 느낄 정도였다. 차라리 작품에서나마 권선징악으로 그들만의 큰 복수가 아니었다는 면에서 조금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지점이 조금 더 현실의 세계에서 집중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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