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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만화경
김유정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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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불안하고 모두가 둥지에서 쫓겨 간다 . / p.77
이 책은 김유정 작가님의 소설집이다. 좋아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데 그동안 외국 작가의 장편소설 위주로 접했던 기억이 있다. 구매하고 아직 안 읽은 도서들 역시도 전부 지금까지 읽었던 종류와 비슷하다. 그러다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 작가의 소설집 발간 소식을 알게 되었다. 선호하는 단편소설과 한국 작가, 출판사라는 점에서 기대를 가지고 고르게 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총 열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길이가 짧은 소설부터 그래도 꽤 비중을 차지하는 긴 소설까지 다양했다. 물론, 소설집이라는 특성상 아무리 길어도 장편에 비하면 턱없이 짧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페이지 수 적게 나오는 경장편 작품집보다 분량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전반적으로는 흥미롭게 읽었다. sf 장르의 소설을 읽기에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게 최대 약점 중 하나이지만 소설집에 나오는 작품들은 이상하게 머릿속으로 하나씩 그려졌고, 나름 구상한 이미지로 스토리를 이해하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머릿속에서 시각화가 된 작품들은 인상 깊게 읽었고, 인물들의 감정이나 상황에 더욱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이 가장 와닿았다. 첫 번째 작품은 <우주 시대는 미신을 사랑한다>라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젠과 호림이라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각자의 이유로 지구를 떠나 외딴 별에서 잡역부로 돈을 모으는 젠, 그리고 공무원인 호림은 미신을 계기로 연인 관계로 발전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돈을 모아 우주선을 구매해 지구로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우주선 안에서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작품들을 읽으면서 '사랑'을 말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로맨틱하게 와닿아 기억에 남았다.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서로 생각할 정도의 일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을 법한 일로 바꾸어서 상상을 하다 보니 더욱 애틋하게 그려진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변화되었다. 그렇다 보니 제목마저도 낭만적인 느낌을 주었다.
두 번째 작품은 <만세, 엘리자베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주은에게는 직장 선배의 추천으로 구매한 로봇 청소기 엘리자베스가 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기상했는데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루 아침에 영혼이 로봇 청소기에게 간 것이다. 그리고 로봇 청소기 엘리자베스는 주은의 몸에 들어왔다. 현실적으로 생각했던 주은은 엘리자베스를 교육해 출근시키고, AI 번역기를 이용해 엘리자베스를 사회화시키기에 이른다. 엘리자베스가 잘 적응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물건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읽으면서 묘하게 위기감이 느꼈던, 그래서 더욱 현실감 있게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과연 내가 주은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비교하면서 읽었는데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심지어 중반에 이르러 주은이 생각했던 불안감이나 이상한 생각 역시도 들었다. 단순하게 영혼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물건이 영혼을 가지게 된다고 해도 그게 과연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지 자격에 대한 문제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밖에도 표제작인 <용의 만화경>을 읽으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추억의 물건 등장에 웃었고, <소모품 마법사>를 통해 계급에 대한 차별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각기 다른 스토리들과 주제로 읽는 이야기들이 마치 골라서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다양해서 좋았던 작품집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