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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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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인 적 없던 가난은 -
가난일 수 없다. / p.176
안 그래도 시는 어려운데 다른 국가의 시인의 작품들은 유독 어렵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구매한 시집이 해외 작품이 실린 책이었다. 몇 번 도전하다가 결국 완독하지 못했고 이사하면서 중고 서점에 판매하게 되었다. 수능 이후로 시는 그야말로 담을 쌓고 살다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국 작품 위주로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미국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이다. 얼마 전에 에밀리 디킨슨의 이야기가 담긴 책 한 권을 읽었다. 그때 그 내용에도 적었던 것처럼 소설인 줄 알고 있었으며,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시인 자체를 모르는 상태였다. 읽다 보니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점이 느껴져서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이번 기회에 시 선집을 선택해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많이 접했던 독자였더라면 시에 숨겨진 의미들을 하나씩 찾아낸다거나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을 텐데 아무래도 생소한 장르이다 보니 초반에는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에밀리 디킨슨의 삶과 연관되어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이해를 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다 보니 한 편의 작품도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두세 번 정도는 읽어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형식 중 하나로 '-' 기호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결도 아닌 가운데 바 형태의 기호가 자주 나오다 보니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과연 어떤 의미로 이를 사용한 것일까. 의도하지 않은 형태는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나름 연속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짐작으로 읽었고, 해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독특하면서도 흥미롭게 와닿았던 형식이다.
두 번째는 낙관 안에 숨겨진 어두움을 느꼈다. 전체적으로 시 자체가 차분하면서도 어둡다고 느껴졌다. 조용하면서도 어두운, 마치 불이 꺼진 방이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위기와 다르게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대체로 희망적이면서도 낙관적으로 느껴졌다. 죽음보다는 생명을 노래하고, 신에게 이를 낙관적으로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시에 신이 자주 등장했는데 종교가 없어서 그 지점도 조금은 어려웠다.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 한 시간의 기다림도 - 긴 시간이다 -' 등의 시의 문구가 마음을 노크했고, 기억에 각인이 되기도 했다. 모처럼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몽글몽글 감성적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러나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책으로 읽었음에도 그녀의 삶을, 그리고 시를 온전히 흡수하기에는 두세 번의 완독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웠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묘하게 빠져들었던, 다시 찾게 되는 시집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