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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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 p.9

요즈음 들어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게 실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독서 좀 한다는 사람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이자 이룬다면 하나의 자부심이 될 목표이다. 그것은 꽤 페이지 수가 많은 대하소설을 읽는 것이다. 이상하게 주변에서 올해 그런 류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그동안 관심이 없었지만 옆에서 하나둘 도전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이 책은 박경리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작품이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이다. 최근 펀딩으로 재출간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시기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수능 문학 지문 이외에 따로 박경리 작가님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작가님의 작품 하나 정도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입문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다. 아무래도 문학사에서 큰 이름을 남기셨던 작가님이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통영이다. 통영에 살았던 김약국이라는 인물의 전후 세대, 더 나아가 가족의 역사를 말하는 작품이다. 김약국이라고 불리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자라게 되는데 결국 어머니는 그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 그렇게 불후한 환경을 지내던 김약국에게 손을 내미는 이는 큰아버지 봉제였는데 부인이 못마땅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봉제는 자신의 조카를 먹여 살렸고, 자신의 직업인 한약방을 물려준다. 그렇게 인생이 풀리면 좋겠지만 세상은 김약국에게 냉혹하다 못해 잔인하다.

김약국은 물려받은 한약방을 결국 팔아 넘기고 자신의 사업에 손을 댄다. 아무리 큰아버지께서 그를 돌보았다고 한들 과거 환경은 무시하지 못하기에 김약국은 세상에 고립된 채로 살아간다. 아니, 고립을 당했다기보다는 세상에 고립을 당한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김약국의 처절한 인생사는 당사자로부터 끝나는 것이 아닌 후대의 자녀들에게도 이어진다. 김약국은 다섯 명의 딸을 두고 있지만 그녀들 역시도 참 기구한 삶을 보낸다. 그렇게 제목처럼 이야기는 김약국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과 조금 많이 다른 느낌을 주었다. 특히, 등장 인물의 이름을 암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독자로서 초반에는 이를 파악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김약국을 주축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김약국의 처와 딸 다섯 명. 최소 스무 명 정도의 인물 이름이 등장하기에 나중에 실린 인물 소개가 아니었다면 계속 헷갈렸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이야기와 인물의 연관성에 집중하면서 읽다가 이름이 익숙해지면서 그들의 감정선을 파악하고자 했다. 중반에 이르러서는 휘몰아치는 몰입감으로 푹 빠져서 읽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참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 통영의 분위기이다. 사실 통영을 태어나서 딱 한 번 가보았는데 풍경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바다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나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도시인데 활자로 느껴지는 통영은 더 마음에 와닿았다. 조촐한 어항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그동안 보았던 통영과는 또 달랐다. 어떻게 보면 통영에 대한 묘사가 김약국의 비극적인 삶을 대신 설명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는 김약국의 삶이다. 어떻게 사람의 삶이 이렇게 힘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김약국의 삶은 그야말로 폐허가 된 땅처럼 느껴졌다. 아마 내가 김약국이라면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어쩌면 김약국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의 선에서 불행이 끝났으면 좋으련만 다섯 명의 딸들마저도 참 안타까웠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마약 중독 등의 어떻게 보면 문제가 있는 남편을 만나 많은 고생을 한다. 심지어 내노라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딸마저 말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게 울렸던 작품이었다. 소설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하나 머릿속에 떠올랐던 점은 사연 없는 집은 없다는 것이다. 사연 많은 김약국과 그의 가족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너무나 피부로 와닿았고, 그들의 처절한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더불어,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셨던 박경리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활자로 읽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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