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디 너희 세상에도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3년 3월
평점 :

단 한 번도 사후 세계를 믿은 적은 없다. / p.30
단편 앤솔로지를 읽다 보면 취향에 맞는 작가님의 작품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마련이다. 현재 믿고 보는 작가님들의 목록을 쭉 보면 단편에서 발굴한 경우가 장편소설로 팬이 된 경우보다 훨씬 많다. 특히, 한국 작가님의 작품은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낯선 이름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작가보다는 내용이나 줄거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이 책은 남유하 작가님의 단편 작품집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SF 앤솔로지 소설집에서 처음 뵙게 되었던 작가님이었고 인간의 존엄성을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안전가옥 출판사의 앤솔로지 소설집에서는 화면공포증이라는 주제로 너무나 트렌드에 맞는 이야기여서 현실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정작 작가님의 작품만 있는 소설집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총 여덟 작품이 실렸는데 서두에 언급했던 화면공포증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어서 반가웠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의 작품들이었으며,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소개처럼 기괴하고도 무섭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실적으로 벌어질 것만 같은 생생한 문체 때문에 더욱 무서움이 배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렇지만 평소에 공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편임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편의 작품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첫 번째는 <에이의 숟가락>이라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에이는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를 비롯해 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인듯하다. 어느 날, 깃털이 달린 이상한 모양의 숟가락을 하나 얻게 된다. 우연히 알게 된 그 숟가락은 피를 먹고, 살인하는 능력을 가졌다. 이러한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강아지를 죽인 오빠를, 그리고 자신을 떠난 어머니를, 더 나아가 살인을 하나씩 저지른다.
가장 섬뜩하게 와닿았던 작품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살인 행위에 대한 묘사보다 숟가락을 활용해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묘사가 너무 직접적으로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 더욱 뚜렷하게 상상이 되었다. 바운더리가 확실한 사람이다 보니 소유한 물건에 대해 예민한 편인데 어떤 면에서 에이가 공감이 되면서도 미우나 고우나 가족을 잔인하게 죽일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물론, 소설에 등장한 에이의 오빠와 어머니는 상처를 준 인물이기는 했다.
두 번째는 <목소리>라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현은 갑자기 24 시간 내에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목소리를 듣는다. 얼마 전 회사 동료였던 대리는 그 목소리를 듣고 결근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내연남이었던 동료를 찾아가 이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그 역시도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현을 죽이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을 때 그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있었고, 어린 자녀가 있었다. 초반에는 자신을 죽이고 자녀를 키우고 살아가라는 어머니는 생명의 욕구를 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첫 번째 작품이 묘사로 인상적이었다면 두 번째 작품은 편견을 경험하면서 소름을 느꼈던 작품이다. 정현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던 어머니가 나중에는 손녀를 죽이겠다고 의견을 바꿀 때에는 읽는 입장에서 당황스러웠으며, 딸보다는 남편을 죽이겠다고 다짐하는 정현의 모습과 대비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결말을 보고 왜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생각의 한계를 느꼈다. 결말만 놓고 보면 진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밖에도 화면공포증, 기시감을 주제로 한 남자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 작가에게 조종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이름을 노리는 괴물의 이야기 등 전반적으로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웠다. 특히, 한 작품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하나 떠오르기도 했다. 저자의 상상력이 너무나 돋보였던 작품들이었다. 개인적인 선호와 조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었지만 킬링타임으로 재미있었으며, 현대 사회와 묶여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