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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0시의 몸값
교바시 시오리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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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사물을 보지. / p.126
크라우드 펀딩이 생겨나면서부터 누구보다 현장에서 많이 듣게 되었다. 보조금이라는 정부 지원으로 기본적인 사업이 이루어질 때도 있지만 더 풍부한 자본으로 클라이언트의 욕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려면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자원을 발굴하는 게 필요했다. 그것이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보니 새로운 모금 방식을 활용해 끌어모아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크라우드 펀딩인 것이다. 그래서 크라우드 펀딩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중요하고 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교바시 시오리의 장편소설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점도 특이한데 그게 부정적인 일에 사용이 된다는 것 자체가 묘하게 흥미로웠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납치는 대부분 가족에게 협박해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많은데 그것을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것까지 정해 준다는 게 상식적으로는 믿기지 않았다. 특히, 펀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나에게는 더욱 말이 안 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소설은 신입 변호사인 고야나기는 로펌에서 공익적인 사건에 무료 또는 저보수로 변호를 하는 프로보노 섹션을 맡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 상사인 미사토의 부탁으로 한 비슷한 또래의 여성 의뢰인을 만나게 된다. 이름은 나코이며, 사기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듯하다. 오히려 재판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묘하게 나코가 신경이 쓰인다.
나코와 상담이 마치고 난 이후 미사토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사무실에 휴대 전화를 놓고 온 고야나기를 나코를 데려다 주기 전 사무실에 들려 가지고 오겠다는 말을 한다. 신변의 위협을 받는 나코를 그냥 두면 안 되었지만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기에 혼자 휴대 전화를 가지고 내려왔는데 나코가 그 시간에 사라졌다. 또한,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대기업에 나코의 납치에 관련된 메일이 하나 온다. 그것은 나코의 몸값이었으며, 크라우드 펀딩으로 24 시간 내에 십억 엔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재 자체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하면서 읽었는데 역시나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범인이 누구인지, 또는 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인지에 대한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되었는데 그것보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고민을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확실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름 현실적으로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단 한 가지 생각을 중점적으로 집중하면서 읽었다. 그것은 바로 딜레마이다. 가장 공감이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현실과 이상, 클라이언트의 욕구와 사회복지 전문가로서의 판단 등 다양한 딜레마가 공존한다. 그 중 하나가 비밀 유지의 원칙이다. 고야나기 역시도 의뢰인의 상담 내용을 동의 없이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데 납치 사건이 벌어지면서 많은 고민을 하는 듯했다. 특히, 경찰에서 협조자로서 진술을 할 때에도 나코가 들려 주었던 이야기는 최대한 자제하는 내용들이 등장한다. 이게 나중에는 미사토와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부분이 공감이 되었고, 현실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와닿았다.
그 외에도 인간의 생명보다 기술의 자본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과 직장에서 얻은 지식을 사적으로 빼돌리려고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윤리 의식들도 나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단지 최신 트렌드에 맞는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소재 자체만 생각하고 읽었는데 그 안에 인간으로서, 다양한 위치에서 필요한 도덕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전개가 되어 추리소설이 아닌 사회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측면만 보더라도 어디까지나 독자 중 한 사람의 의견으로서 너무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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