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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개미지옥
모치즈키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모모 / 2023년 3월
평점 :
사건이 항상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 p.363
어렸을 때에는 개천에 용 난다는 속담을 자주 표현할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이 등장했던 것 같다. 뉴스만 보더라도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청소년이 공부해 좋은 직업을 얻게 된다거나 대학에 합격하는 일들이 꽤 있었는데 요즈음은 보기 드물다. 어른들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가 안타까우면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출생 환경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받는다거나 무시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누구나 기회의 평등을 이루어야 하는데 막상 그게 쉽지 않은 점은 아이러니이자 큰 난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모치즈키 료코의 장편소설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점 하나만 믿고 선택하게 된 책이다. 아무래도 직업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기에 선호하는 소재이면서 그늘이나 편견이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일본 소설이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와 또 다른 새로움을 안겨 줄 것이라는 기대로 읽게 되었다.
소설은 두 여자의 살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명의 여자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러 가는 중 총에 맞아, 또 다른 여자는 한 사람의 집 욕조에서 사망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성을 사고 파는 매춘부라는 점에 있다. 거기에 식품 회사와 방송사에 하나의 협박 편지가 도착한다. 세 번째 희생자가 발생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돈을 계좌로 보내라는 협박 편지이다. 식품 회사의 블랙 컨슈머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는 살인 사건과 협박 편지가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 고리를 찾아 나선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보듯이 사회의 부조리나 이슈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통해 성매매를, 피해자들의 아이들을 통해 아동 방임과 학대를, 등장 인물들의 배경을 통해 빈부 격차와 현실을 보여 준다. 일본이 배경이지만 같은 문화권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에서도 익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술술 읽혔으며, 이해 또한 쉬웠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두 가지 측면을 깊게 생각했다. 첫 번째는 출신 배경에 대한 빈부 격차이다. 소설에 많은 이들이 등장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스에오와 쓰바사라는 두 인물에 집중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스에오는 매춘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장남이며, 자신의 학업을 유지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지만 동생에게 최선을 다하는 오빠이다. 피라미드의 맨 마지막에 있는 계층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쓰바사는 의사인 아버지와 의대를 다니고 있는 동생이 있는 장남이며, 누가 봐도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계층이다. NPO 단체를 만들어 매춘부들을 돕는 일도 하고 있는, 겉으로만 본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사람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두 사람을 극단적으로 평가한다. 스에오는 동생에게 자상하게 대하는 사람으로 절대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사람, 쓰바사라는 인물은 이중적이면서 답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회는 냉혹했다. 어쩔 수 없는 두 사람의 격차가 한 사람을 괴물로, 다른 한 사람을 인간으로 대우했다. 그런 점에 참 답답하게 다가왔다.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배움의 기회나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도 박탈당했다는 점에서 이는 깊이 고민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스에오에게만큼은 그 사회가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지 않았을까.
두 번째는 매춘부이다. 사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일부 직업은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성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직업을 가진 많이 등장한다. 살인 피해자 두 사람을 비롯해 스에오의 어머니 역시도 매춘부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았던 작품들과 달리 매춘부를 조금은 다르게 그들 역시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피해자의 신분으로 사건 자체가 흐려질 것을 고려한 모습이 그렇다. 조금 새로우면서 인상 깊게 보았다.
범인을 찾는다는 측면에서 추리의 형식을 띄지만 그것보다는 사회를 고발하는 내용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그래서 등장 인물 중 범인이 누구일까 고민하는 것보다 현대 사회에서의 부조리한 사회 계급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어차피 흙탕물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결국은 계급을 무너트뜨릴 수 없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그린 듯했다. 그런 점에서 가장 무겁게 다가왔으며, 감정적으로도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