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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애니 라이언스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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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생각보다 꽤 괜찮을 것 같은데요. / p.264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어르신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요즈음은 부모님보다 어르신들을 더 많이 모실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혼자 생각에 깊게 잠기는 편이다. 생각의 주제는 거의 노인의 편견에 대한 통찰과 반성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집에서 개인적인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을 선호하시는 분들이 계신 반면, 오히려 바깥 활동으로 에너지를 얻으시는 분들도 꽤 많다. 특히, 일하고 있는 현장에는 사회활동 프로그램으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시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절반 정도밖에 살지 못한 나보다 훨씬 열정적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과연 노인이라는 이유로 한계를 정해야 하는가.
이 책은 애니 라이언스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를 보고 고르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만 가만히 책 선택을 분석해 보니 생각보다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장르 소설에 비하면 적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거기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도 소설이 원작인 어느 할아버지의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작품 역시도 할머니가 화자인 점을 보고 선택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유도라 허니셋이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주어진 시간을 물 흐르듯이 살아가고 있는 여든다섯 살의 평범한 할머니이다. 유도라 할머니는 어느 날 안락사에 대한 인쇄물을 보게 된다. 그리고 회사를 찾아가 그곳을 찾아가 생일을 지정해 진행하고 싶다고 요청한다. 안락사 진행의 특성상 바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회사의 룰에 따라 상담을 받기로 했다. 그러던 중 로즈라는 이름의 한 학생을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과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소재의 이야기이다 보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유도라 할머니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감정적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고, 손녀뻘인 로즈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이야기들이 나름 흥미로웠다. 페이지 수가 생각보다 두꺼운 편이어서 중간에 지루하다거나 늘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와 사회적인 관점에서 깊은 여운을 주어서 그럴 틈조차 느끼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한 가지 관점에 집중하면서 읽었다. 노인에 대한 문제이다. 유도라 할머니에게는 몽고메리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유일한 가족인 듯 보였다. 로즈나 스탠리라는 이웃들이 있지만 케어를 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유도라 할머니의 생각과 선택에 큰 공감을 했었다. 주변에는 사후에 처리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며,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존엄한 죽음을 말이다.
또한, 유도라 할머니는 과거 아버지의 부탁으로 동생을 지켜야 하는 장녀이기도 했다. 비록, 아버지와 동생은 할머니의 곁을 떠났지만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동생에 대한 마음 등 그러한 일들이 할머니에게는 큰 짐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세상을 더 살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편안한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읽는 내내 허구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과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전쟁을 겪은, 그리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많은 어르신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 지점이 현실적으로 와닿았고,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또한, 매일 마주하는 어르신들의 말씀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이는 사회복지적인 측면에서 연관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직업 정신이 발휘되었던 것 같다.
로즈와 스탠리 할아버지를 통해 변화되는 유도라 할머니의 모습보다는 나이가 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많은 걱정과 고민을 했던 할머니의 모습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물론, 모습들이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묘하게 서글픈 그림자가 책을 덮는 순간까지 함께 있는 것만 같았다. 내용은 참 유쾌하고도 흥미로웠지만 여운만은 참 무거웠던, 그래서 별점은 다섯 개였던, 만족스러운 이야기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