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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소리를 듣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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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가 찰나에만 보여 준 환상. / p.12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밤의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 확실하게 표현하자면 무섭다고 느끼는 편이다. 아무래도 밤에 들리는 소리는 낮보다 크게 들리기 때문에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분명 집에서 가전 제품은 24 시간 내내 돌아갈 텐데 낮에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밤에는 심장 떨리게 만든다. 거기에 어둠이 눈앞을 가리고 있기에 그런 마음은 배가 되어 돌아온다.
그렇다 보니 어떻게든 소음을 만들어 수면에 취하려고 하는 편이다. ASMR을 재생시키는데 대부분 수면에 도움이 되는 소리가 많다. 빗소리, 시냇물소리, 비행기 안에서 들리는 소리, 기차 안에서 들리는 소리, 모닥불소리 등 취침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일상의 소리를 가릴 수 있는 컨텐츠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 책은 우사미 마코토의 장편소설이다. 내용도 끌렸지만 그것보다 출판사에 대한 믿음 가지고 선택한 책이다. 작년에 일본 작가의 추리 소설을 읽었는데 15 초라는 찰나의 순간을 주제로 해 네 가지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신선하면서 인상적인 부분을 많이 느꼈다. 그동안 낯익은 일본 작가만 보다 덕분에 새로운 작가들의 추리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좋은 느낌을 받았기에 이번 신작 역시도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류타라는 인물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전직 교사이면서 나름 공부에 대한 기대를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류타 역시 유전자를 물려받아 영특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학교의 교육 시스템이 류타의 지능에 비해 너무나 느리게 느껴질 정도이다. 류타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고,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포기했다.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면서 아버지와 심리적 담을 쌓고,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류타에게 조금은 기괴한 일이 벌어진다. 자살 시도를 한 여자를 보게 된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오고 가는 공원에서 말이다. 류타를 빤히 쳐다보면서 칼로 손목을 긋는 여성. 심지어 피가 묻은 칼을 류타에게 주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경찰에 피의자로 몰린다. 당사자가 자해라고 사실을 말해 일단락이 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그 여자가 다니는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달나라라는 이름을 가진 고물상을 자주 드나든다. 이야기는 과거에 벌어진 살인 사건과 고물상에서 심부름센터 의뢰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반에는 무섭고 또 오싹하게 느껴졌다. 유리코와 류타의 만남 자체가 그렇다. 자해 현장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목격하게 되는 것을 류타의 입장에서 상상해 그려보니 그야말로 트라우마 수준으로 소름이 돋았다. 심지어 행위자가 나를 보고 웃는다고 생각하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공포 분위기로 느끼면서 읽었는데 추리 소설이면서 주제나 소재 자체가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친근하게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술술 읽히면서 흥미롭게 완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두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부정적인 면이다. 그 중에서도 은둔형 외톨이라는 소재가 무겁게 다가왔는데 사회적 이슈이자 복지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직업적인 부분으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언급했던 것과 같이 류타는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간다. 너무 앞서나간 두뇌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립이 되었는데 이를 보면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류타는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교사와 학생, 더 나아가 사회에서 이를 발전시켜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체면과 욕심으로 류타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태도도 화가 났었다. 다른 측면으로 대한민국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보였다.
두 번째는 긍정적인 면이다.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던 류타는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유리코를 만나 삶이 바뀐다. 학교에 다니면서 다이고라는 친구를 사귀었고, 심지어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장소를 만난다. 사회에 발자국을 딛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류타에게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희망을 보았고,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현실로 적용시켜 본다면 동굴에 숨는 이들도 충분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주위 사람들의 관심만 있다면 이 또한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주는 듯했다.
추리 소설의 긴장을 가지고 가면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소재,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점점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모습들까지 전반적으로 좋아하는 부분들을 모두 갖춘 작품이어서 만족감이 꽤 크다. 안 그래도 믿고 보는 출판사의 소설이어서 기대치가 높았는데 그만큼 충족이 되어서 좋았다. 현실을 관통하는, 성장을 좋아하는, 추리의 매력을 느끼는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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