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아르테 오리지널 13
요시다 에리카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저도 한데 묶여서 인류라고 불리기는 싫으니까요. / p.13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가 두 남녀가 금전적인 문제로 동거를 하게 된 이야기를 다룬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공감이 되었는데 자취를 하면서 더욱 와닿는다. 월세부터 공과금, 식비까지 하나하나 통장에서 로그아웃이 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 맞는 룸메이트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싶다.

이 책은 요시다 에리카의 장편소설이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내용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선택하게 된 책이다. 애초에 연애 감정이 없던 두 사람이 동거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관심이 갔다. 줄거리를 보니 금전적인 문제보다는 성적 지향의 문제로 하게 되었다는 내용인 듯한데 그러한 지향성에 대해 딱히 거부감은 없는 편이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카하시와 사쿠코이다. 다카하시는 마트에서 채소를 담당하는 직원이며, 사쿠코는 마트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어느 날, 다카하시가 근무하는 마트 지점으로 출장을 온 사쿠코는 양배추에 이름이 적힌 것을 본다. 담당하는 다카하시에게 물었고, 그런 상황에서 같이 온 일행은 마치 핑크빛을 보듯 둘을 대한다. 사랑의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던 사쿠코는 혼란스러워했고, 다카하시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건넨다.

그런 와중에 사쿠코는 같이 살기로 한 친구로부터 취소 통보를 받는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검색을 하다가 에이 로맨틱 에이 섹슈얼에 관한 글을 발견하는데 마치 자신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글을 적은 사람이 다카하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사랑의 감정은 느끼지 못하지만 혼자가 너무 외로웠던 사쿠코는 다카하시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소설은 그렇게 두 사람의 동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의 종류에는 생각보다 많은 종류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에이 로맨틱 에이 섹슈얼이라는 단어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에이 로맨틱은 연애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성적 지향을, 에이 섹슈얼은 성적인 이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성적 지향을 뜻하는데 소재부터 줄거리가 너무 흥미로웠던 탓에 술술 읽혀졌지만 반대로 생각은 조금 많아져서 그게 또 무겁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읽으면서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초반부터 시작해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헤테로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사쿠코의 부모님께서는 결혼을 부추기고, 주변 사람들은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전한다. 사쿠코의 후배는 감정이 없는 호의에 혼자 착각하고, 사쿠코의 전 남자 친구는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소설의 그 세계에서는 사쿠코와 다카하시가 비정상인 것처럼 말이다. 동성을 좋아할 수도, 그 아무에게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 단지 사랑이 하나만 있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인물들이 무례하게 보였다. 의도가 어떻게 되었든 두 사람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두 번째는 가족의 의미이다. 다카하시와 사쿠코도 가족이라고 하는데 사랑이 없는 그들의 관계도 과연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는 셰어 하우스의 형태로 모르는 이들과 함께 숙식을 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이를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식구라고 부르면 수긍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편견을 가지고 읽었는데 가족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스스로의 생각에 반성이 들기도 했다.

세 번째는 가족의 형태이다. 사쿠코의 가족처럼 부모와 자녀, 다카하시처럼 조모와 손자 등의 가족 형태가 등장한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정상적인 것처럼 비추기도 한다. 다카하시는 그런 면에서 가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피하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제외한 형태는 비정상적으로 보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 독거 가정을 비롯해 많은 형태가 있는데 그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애정이 없는 두 남녀의 출산과 양육에 관한 문제 등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사랑과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풀어놓은 작품이었다. 그 지점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마치 사람은 다양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야기인 듯했다. 초반에 다카하시가 양배추에 이름을 달면서 이름이 있으면 제대로 불러주고 싶을 뿐이라며, 자신도 인류로 뭉뚱그려서 불리기 싫다는 내용의 말을 한다. 아마 이 지점이 헤테로 성적 지향성으로 우세한 사회에서 같은 사람으로 불리기 싫다는 마음을 대변한 것은 아닐까.

사실 결말은 뻔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는데 현실적이고 잘 풀어낸 듯해서 이러한 결말조차도 참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드라마가 원작이기에 완독 후 OTT를 통해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있는데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까지 있어서 여러모로 참 재미있었던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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