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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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을 그의 반응이 사방의 피보다 더 무섭다. / p.12

점점 범죄가 지능적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체감하게 되는 범죄는 사이버 피싱 범죄와 성범죄가 아닐까 싶다. 모바일 기기가 발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문자나 SNS으로 재산 피해를 받고, 더 나아가 인생까지 망치는 일이 증가한다. 또한, 과거에는 대면으로 납치해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현대에 이르러 사이버 공간을 활용해 대면하지 않고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것도 심리를 이용해 더욱 교묘하게 빠져나가기도 한다.

이 책은 티파니 D. 잭슨의 장편소설이다. 현대의 큰 이슈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눈길이 갔던 작품이었다.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또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소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많이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 특히, 소설의 소재인 그루밍 범죄는 처음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인챈티드는 열일곱 살의 학생이다. 노래 부르기는 좋아하며, 수영에도 소질이 있다. 그러나 많은 동생을 두고 있는 장녀여서 이를 케어하는 일이 많기도 하다. 어느 날, 가수 오디션을 보러 가던 중 인기 가수인 코리 필즈라는 이름의 한 남자를 만난다. 코리 필즈는 인챈티드의 목소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그녀를 가수로 키워 주겠다면서 가족에게도 이를 제안한다. 얼굴이 알려진 가수의 말에 부모를 설득했다. 결국 인챈티드는 코리 필즈와 함께 공연 투어를 간다거나 노래 녹음을 하는 등 가수의 꿈을 펼치지만 코리 필즈는 그녀의 순수한 의도와 다르게 나쁜 마음을 먹고 이를 이용한다.

어두운 소재의 특성상 많이 무겁지는 않을지 걱정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스토리로 빠져들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는 전개가 한몫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챈티드의 심리와 코리 필즈의 극악무도한 행동, 그리고 인챈티드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모두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루밍 성범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인챈티드의 특성상 그들을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까지도 꽤 진지하게 다루었다.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성인과 미성년자의 관계이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연애는 평행선을 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물론, 열아홉과 스무 살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소설에서 인챈티드는 열일곱 살의 미성년자, 코리 필즈는 스물여덟 살의 성인으로 등장한다. 인챈티드는 자상하게 챙겨 주는 코리 필즈에게 사랑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는데 인챈티드가 느꼈을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닌 동경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챈티드의 친구도 성인의 남성과 연애를 하는 내용도 그려지는데 미국 사회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불순한 의도로 인챈티드에게 접근한 코리 필즈를 알게 된 이상 그 관계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말을 통해 친구와 같은 순수한 사랑도 있다는 내용이 실리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관점이기는 하지만 가치관의 충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그루밍 성범죄이다. 시사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의 그루밍 성범죄를 익히 듣기는 했었지만 소설로 느꼈던 것은 더욱 심각했다. 동영상을 찍어 이를 배포하고,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성관계를 맺고, 납치에 감금까지 하는 등의 내용을 읽고 있으니 그 자체도 참 고통스러웠다. 거기다 성인 남성에 유명인이라는 권력까지 합쳐지니 인챈티드 입장에서는 이를 거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코리 필즈가 행한 범죄 자체로도 충격적이었는데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던 점은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코리 필즈 역시 같은 인종이라는 이유로 이를 두둔했으며, 인챈티드를 내몰았다. 경찰은 인챈티드의 말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증명하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가족인 동생마저도 인챈티드가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선택한 일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인챈티드를 믿어 주는 사람도 있기는 했었지만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모습들은 참 안타까웠다.

배경은 미국이고, 스토리는 허구의 소설이지만 왜 이렇게 현실감이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이는 아마 뉴스에서 보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현재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스토리의 몰입도와 전개도 훌륭하지만 내용을 읽으면서 그루밍 성범죄에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느낀다는 것 자체로 이 작품은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많은 독자들에게 이 작품이 읽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리뷰를 마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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