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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나혜석.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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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 p.19
꽤 오랜 시간 크게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다.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기에 여행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외향에 가까운 동생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바깥 활동보다는 집에서 보내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학교와 도서관, 학원과 집 등 생활반경이 좁은 나로서는 당연히 여행은 싫어할 수밖에 없는 성향인 줄로만 알았다.
이런 성향을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은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떠난 기차 여행에서부터였다. 그동안 친구를 포함해 가족과도 하루 이상의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심지어 동생은 친구들과 해외 여행을 떠났음에도 별로 부러워하지 않았는데 충동적으로 떠난 8 박 9 일 간의 전국 내일로 여행을 떠나면서부터 눈을 뜨게 되었다. 생각보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여행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나혜석 작가님과 하야시 후미코 작가님의 여행 이야기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지게 된 책이다. 여행 자체에 눈길을 끌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일제강점기라는 시기에 일본인과 한국인의 여행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출판사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지배를 받는 나라에서 일등석을, 지배를 하는 나라에서 삼등석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큰 호기심으로 작용했기에 기대가 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이 에세이에서는 나혜석 작가님의 <구미여행기>와 하야시 후미코 작가님의 <삼등여행기>가 수록되었으며, 중간에 이다혜 작가님의 잇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 나혜석 작가님은 남편인 김우영 님께서 만주 단둥 부영사를 지내시면서 포상으로 떠난 여행으로 1 년 8 개월 23 일이라느 시간에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하야시 후미코 작가님은 그로부터 2 년 후, 약 7 개월 가량 떠났다. 비슷한 시기에 두 여성의 여행기가 수록되었다.
나혜석 작가님의 이야기는 외향적인 사람의 로열 패밀리 여행기처럼 느껴졌다. 세 자녀와 시댁, 친정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하야시 후미코 작가님에 비해 경제적인 문제는 크게 보여진 것 같지는 않았다. 각 나라 사람들의 특징과 함께 미술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이는 아마도 나혜석 작가님께서 미술 분야의 큰 영향을 미치신 분이기에 당연한 내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미술 자체에는 문외한이기에 파리에 대한 예찬과 함께 보고 들었던 많은 이야기가 참 새로웠다. 여행기는 새로웠지만 여성에 대한 시각은 참 인상적이었다. 특히, 인터뷰 내용 중 아이를 기르면 노파가 되겠다는 기자의 말에 마음은 아직껏 청춘 그대로이다라는 말씀이 참 와닿았다.
나혜석 작가님의 여행기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하야시 후미코 작가님의 이야기가 더욱 공감이 되었다. 아무래도 인세를 가지고 해외 여행을 떠났다는 점에서 보통 일한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나는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더욱 와닿는 요소이지 않을까. 물론, 나 역시도 아르바이트나 용돈을 모아 첫 여행을 갔다는 점에서 후미코 작가님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혀지기도 했다. 돈이 걱정되어 먹고 싶은 것을 참았다거나 중간에 사용한 돈을 정리해 둔 내용을 보면서 돈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여행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대 시대와 다르게 후미코 작가님께서 사용하신 돈은 현재가치로 삼천만 원이 넘었다는 점에서 괴리감이 느끼기도 했다.
당시 여성이 해외를 나간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을 텐데 이에 대한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신선했으며, 새롭기도 했었다. 현재에는 남녀노소 해외를 나가는 게 쉬운 일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 어려운 일을 해내셨던 두 분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씁쓸함이 들었다. 특히, 나혜석 작가님은 여성의 관점으로서 표현한 부분이 많았기에 이런 점은 두고두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쉽게 술술 읽혔지만 그와 별개로 당시 시대상과 여행기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느낌을 주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