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 찬란 실패담 - 만사에 고장이 잦은 뚝딱이의 정신 수양록
정지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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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과 상관없이 내 몸에만 집중하기. / p.18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생각보다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의 내 모습을 한 마디로 '실패하기 싫어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아이.'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뒤집기, 잡고 일어서기, 걷기 등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의 아기 시절과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누구보다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유는 실패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엇을 모를 때에는 이것저것 참 많이 도전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남자 아이들과 고무동력기나 글라이더를 만드는 대회에 출전한다거나 반장 선거 후보로 나갔다. 심지어 방송부 기술부원으로 유일한 여자 학생으로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는 다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훈장인 듯하다. 지금은 해탈할 정도로 실패를 많이 경험했지만 여전히 도전은 두렵다. 이유는 실패가 싫다기보다 스스로에게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지음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비슷한 또래의 세대를 살고 있기에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했었다. 그런 이유로 트위터 팔로우까지 했었다. 그동안 집필하셨던 <젊은 ADHD의 슬픔>을 시작으로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까지 에세이는 전부 읽었으며,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하지 않고 읽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저자의 파란만장 실패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실패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시험에 낙방했다거나 인생이 흔들릴 정도로 큰 실패는 아니다. 요가를 배우는데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야기, 게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다른 유저들로부터 부모님의 안부를 들었다는 이야기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너무나 사소한 실패의 경험들이 담긴 책이다. 

몸이 둔해 스쿼트 동작 하나도 낑낑대는 모습, 게임을 접으라는 농담을 했었던 친구들의 목소리, 업무 실수로 자괴감이 들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읽는 내내 나의 이야기처럼 큰 공감이 되었다. 공감과 함께 저자의 유머 코드는 통했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마치 재미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본 것처럼 웃으면서 읽었던 것 같다. 얇은 페이지 수를 가지고 있기에 술술 읽을 수 있었고, 퇴근 후 두 시간 정도에 완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팀장님 죽이기>와 <매너 없는 극장 매너>라는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팀장님 죽이기>는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을 쓰러트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상사들에게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팀장님께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그게 바로 회식 자리였다. 술을 잘하지 못하지만 복수하겠다는 의미로 술을 부어라마셔라 권했고, 결국 팀장님께서는 술로 인한 병으로 다음 날 연차를 사용하셨다고 한다. 회식을 복수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적은 없었지만 한번쯤 상사에 대한 복수를 생각했던, 그리고 여전히 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너무나 공감이 되었던 내용이다.

<매너 없는 극장 매너>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극장 매너에 대한 다른 생각을 담고 있다. 저자는 영화를 멀리 하는 편이라고 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조금은 신나면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극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사실 단순히 영화를 웃고 떠들면서 보는 것에 대한 바람으로 끝이 났다면 조금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어린 아이들의 차별에 대한 시각까지 언급을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다 소리를 낸다면 매너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러한 에티켓이자 규칙이 문화 소외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그밖에도 서른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어 노인 편견로 나아가는 에피소드나 이사가는 과정을 그렸지만 동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까지 사소하지만 소외된 누군가를 챙기는 저자의 따뜻한 모습은 참 인상 깊었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야기를 읽으면서 익숙했던 차별과 편견을 다시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이번 에세이 역시도 참 공감이 많이 되었다. 같은 세대를 살고 있는 삼십 대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더 나아가 매일 사소한 실패들을 경험하고 좌절하는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울고 웃을 수 있었다. 그동안 실패하면서 느꼈던 스트레스와 부정적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져 산뜻했던 독서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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