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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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블랙홀. / p.12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블랙홀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어감이다. 뭔가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고 할까. 마치 진공 청소기에 들어가는 느낌과 비슷하다. 상상을 하기 싫을 정도로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물론, 그게 평생 살면서 경험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가끔 등장하는 싱크홀에 대한 기사도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운전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에 무섭기도 하다. 블랙홀은 너무 멀게 느껴져서 단지 그 느낌이 싫다 이 정도라면 싱크홀은 가깝게 느껴져서 두려움의 크기가 더 크다고 할까. 스스로 조심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조금 더 무섭다.

이 책은 김유원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전작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올해 읽고 싶은 책 중 하나이기도 했는데 아직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희영이라는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된다. 희영의 아들인 희찬은 어느 날 엄마 이름을 대면서 가져다 달라는 말과 함께 모르는 사람에게 쪽지를 받는다. 쪽지에는 '블랙홀'이라는 단 세 글자만 적혀 있었다. 그 단어를 보자 희영은 과거 어렸을 때 같이 지내던 친구인 필희와 은정이 떠오른다. 동갑내기 친구로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지만 어른들의 사건으로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고, 필희와 겪은 이상한 현상과 필희 실종 사건으로 이어진다. 스토리는 희영을 중심으로 남편인 찬영, 필성의 동생 필성을 비롯해 다양한 인물들의 각자 사정들과 심리로 이어진다.

읽으면서 등장 인물들의 상황에 하나하나 공감이 되었다. 필희가 사라진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여덟 사람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장편 소설보다는 연작 소설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더욱 선호하는 편이기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초반에는 블랙홀이라는 쪽지를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후반에 이르러 미확인 홀에 대한 정체를 추측하는 재미가 있어서 그것 또한 하나의 흥미를 끈 소재였다. 전체적으로 너무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미확인 홀이 물리적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인물들의 마음에 등장하는 홀을 지칭한다는 느낌이 가장 강하게 들었다. 겉으로는 나름 잘 살아가는 듯하지만 희영에게는 과거의 친구와 보았던 현상에 대한 충격과 친구를 사라지게 했다는 죄책감이, 필성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사라진 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 미정에게는 딸로서의 무게감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느껴졌다. 뭔가 하나씩 말할 수 없는 상실과 분노, 실패 등 사정을 안고 사는 듯했다. 인물들의 이야기는 각자 가지고 있는 미확인 홀을 파헤치는 과정을 찾아내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심리적인 등장인물들의 묘사가 와닿았다. 

인물들은 블랙홀에 빠져들 때마다 과거를 곱씹으며, 다른 이를 증오하거나 운명이라고 여긴다. 꼭 큰 절망과 실패는 아니더라도 사소하게 함정이나 구멍에 빠져 허우적대는 경험을 가졌던 사람이기에 나 역시도 이들에게 몰입했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묘하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개인의 블랙홀에 들어가는 일이 있지 않을까. 경험을 했던 독자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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