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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1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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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한 사람은 부재중이기 마련이지요. / p.26
일본 소설은 생각보다 많이 읽고 있으며, 영미 소설은 조금씩 읽고 있지만 독일 소설은 예전에 처음 접했던 기억이 있다. 한 학생이 느낀 학교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다. 결말 자체도 충격적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다른 나라의 작품들은 문화 차이로 조금 답답함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 듯하다.
이 책은 페터 한트케의 장편 소설이다. 사실 고전 문학과 외국 작가는 크게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즐겨 보는 북 크리에이터분의 추천으로 작가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나름 기회가 생겨 사전 정보나 조사 하나 없이 그저 새로운 모험으로서 선택했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전에 읽었던 독일 작품이 큰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걱정보다는 설렘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무대는 잘츠부르크와 가까운 듯하지만 조금 벗어난 탁스함이라는 도시이다. 탁스함의 약사로 일하고 있는 화자는 딸과 부인이 부재로 자리를 비우는 동안 목적지 없이 길을 나선다. 아내의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음식점에 들어가 사람들을 보거나 만나기도 한다. 또한, 두 사람을 만나 같이 여행을 떠난다. 사실 내용 자체는 버라이어티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저 화자가 걸으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제목이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참 정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스함이라는 도시 자체도 네온사인이나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보다는 어두워지면 사람들의 왕래도 하지 않는 시골의 감성이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잘츠부르크와 더욱 비교가 되기도 했었다. 도시의 묘사부터 화자의 성향, 벌어지는 일까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들과는 조금 다르게 잔잔하게 시작해서 마무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들이 대부분 이런 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에 취향에 맞아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관통했는데 화자는 왜 그렇게 정처없이 다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과연 그렇게 다니면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외향적인 스타일의 인물은 아닌 듯했고, 그렇다고 일상을 벗어난 해방감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보면서 화자에게서 무미건조함을 느꼈다. 그래서 순수하게 의문이 들었다.
나름 해답을 찾으면서 읽다 보니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띈 단어가 있었다. 소설의 후반에는 모험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모험이라고 하면 걸리버 여행기를 비롯해 크고도 작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상상했기에 기껏해야 모르는 사람들과의 여행 또는 사람들과의 의견 충돌 정도의 이벤트만 벌어지는 소설에서 모험이라는 게 조금 역설적으로 보였다. 그 지점에서 들었던 결론은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방법으로서 이해가 되었다. 화자의 삶의 의미를 찾는 모험기라고 말이다.
시적이면서도 은유적인 표현들이 많아 화자의 모험과 별개로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다 보니 화자처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도 하고 있었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개인적으로 생각이 참 많아졌다. 작품을 통해 상상속으로 삶의 여정을 떠나게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색다른 느낌을 주었던 작품이어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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