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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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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우리에게 와주지 않았다. / p.185
소설을 읽기 전 제목으로 줄거리를 추측하거나 읽을 때면 내용으로 제목의 의미를 파악하는 등 뭔가 조금이나마 머리를 굴리기 위해 노력하는 습관이 생겼다. 예전에는 그저 재미를 위해 독서를 즐겼다면 이제는 리뷰를 적으면서 감정을 표현하고 정리하는 연습, 또는 조금이나마 주체적으로 독서 활동을 즐기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지점 중 하나가 제목으로 유추하기 정도가 된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려고 해도 도통 답이 안 나오는 제목들이 있다. 에세이나 비소설 계열의 도서 같은 경우에는 비유적이기보다는 직관적으로 제목이 등장하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읽지만 가끔 소설에서 도저히 모를 때는 읽기 전부터 머리를 싸매는 편이다. 모르는 사이에 긴장하고 읽게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책이 날 잡아먹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을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단시엘 W.모니즈의 단편 소설집이다. 처음에는 표지로, 다음에는 문구로 각인되어 고르게 된 책이다. 그림에 홀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표지에 관심이 갔는데 여성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게 눈에 띄었다. 한국 작가 초기작을 생각보다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해외 작가의 초기작 또한 기대가 되어 읽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열한 작품이 실렸다. 작품에는 이상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영미권 작품이다 보니 문화 차이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있었는데 이 작품들은 그 차원을 넘어 어떻게 보면 기괴하다고 느낄 정도로 인물들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는 집중하기 힘들었으며, 인물들의 성향과 맞닿은 상황 자체가 조금은 불편하면서도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생각할 수 있다는 지점들이 많았기에 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작품들을 읽으면서 내내 빨강이라는 색깔과 함께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표지가 붉은색이기에 떠오르는 면이 있겠지만 표제작이자 가장 먼저 시작되는 소설인 <우유, 피, 열>에서 우유에 피를 떨어트리는 장면에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또한, 성관계 시 느끼는 감정이나 육체 변화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직설적이면서 자극적인 묘사는 아니었지만 이 지점이 직설적인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가장 인상적인 면은 종교와 여성의 등장이다. 직접적으로 종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혀들>이라는 작품부터 시작해 내용 중간에 하느님이나 신을 언급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혀들>은 제이라는 주인공이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자라온 것으로 보이는데 목사의 여성관에 대해 반기를 들면서 무례한 행동을 했고, 그 일을 원인으로 제이는 부모님께, 제이의 동생은 헛된 소문으로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보수적인 면이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소설에서 등장하는 종교는 편협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에 대한 시각 또한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언급한 <혀들>이라는 작품에서는 여성의 체모에 대한 목사의 이야기가, <천국을 잃다>에서는 암에 걸린 부인을 두고 술집을 드나들며 다른 연인을 두는 남편이, <적들의 심장>에서는 교사의 외설적인 쪽지를 발견하는 아빠가 등장한다. 남성들이 보는 여성의 환상이나 성관계에 대한 본능 등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이 지점이 가장 불편했다. 물론, 여성인 화자가 성관계의 권태로움을 느끼는 일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이 또한 하나의 폭력이자 편견으로 보였다.
감각적인 소설이기에 문체 자체가 한번 정도는 깊이 생각해야 해석이 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는데 그것 또한 매력적이었다. 또한, 사회적인 이슈나 이야기들을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나름 흥미로운 독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이상한 화자들일지 모르지만 문학적인 감각과 사회적인 이슈를 동시에 잡은 소설이어서 좋았다. 불쾌한 감정 자체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