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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평점 :

깨어날 때까지 계속 연기해야 한다. / p.51
가족에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보다 말할 수 없는 생각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전자는 회사에서 있었던 재미있었던 일들이고, 후자는 회사에 다니면서 느꼈던 고민과 걱정이다. 아무래도 하나하나 작은 일들까지 말씀드리면 좋아하시기는 하지만 가끔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과 힘든 일로 직장생활을 하는 자식을 보면 마음 아파하실 것 같아 더욱 숨기는 편이다.
가끔은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보통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크게 관심이 없는 스타일인 듯하지만 은근히 예민한 편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실감하고 있다. 스스로 이러한 부분을 억제했던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나 서운하거나 실망한 상황에 대한 당시의 감정들이 갑자기 찾아오는데 그것 또한 안에서 삼킬 뿐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핏줄이라고 불리는 가족 관계에도 생각보다 비밀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김도윤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작년에 남편이 사라진 아내의 심리를 그린 외국 장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가까운 이가 사라지는 소재는 생각보다 많기는 하지만 부부는 또 다른 의미로 느껴져서 나름 인상적으로 느꼈던 적이 있다. 또한, 읽으면서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은데 한국 작가님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갔다. 아무래도 정서나 문화 자체가 익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점이 기대가 되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은 남편 원우가 사라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아내 정하의 시점에서 남편이 사라지는 일들과 살인 사건, 같은 동네에서 죽은 한 여자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하는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이후 결혼이 하나의 도피처라는 생각으로 원우와 결혼한다. 원우 역시도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쫓기듯 정하에게 프러포즈를 하였는데 둘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원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하는 원우의 일기를 발견하고 다른 인물로 대변된 원우의 날것을 알게 된다. 또한, 남편의 피 묻은 옷과 칼을 목격했는데 이 역시도 딸인 하원과 아들 상원을 위해 모르는 척하기로 한다. 그렇게 남편이 사라진 지 십 년이 흘러 아이들은 성장하고, 정하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큰 사건의 열쇠는 원우의 살인 사건과 일기장이 쥐고 있지만 내용 자체로만 본다면 정하의 심리 상태에 집중되어 있다. 원우와 하원, 상원의 생각 역시도 엿볼 수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하라는 인물을 통해 나오거나 필터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다른 인물보다 정하에게 더욱 감정이입해서 이야기를 읽었으며 문학이나 연극의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기는 하나 설명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기존에 읽었던 비슷한 소재의 소설과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남편이 사라진 이유 자체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 읽었던 소설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면 이 소설은 가족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결혼에 대한 솔직한 심경이 담긴 다이어리를 읽으면서 배신감이 들었으며, 원우가 사라진 이유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더욱 속이 답답했다. 원우가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기에 무게감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게 행동에 대한 정당성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겁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하의 생각 또한 크게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초반에는 감정이입이 되었지만 정하 역시도 당시 겪은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원우를 선택했다. 물론, 남편의 행동을 눈감고 아이를 책임지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불안정한 원우와 정하의 관계속에서 하원과 상원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 그저 원우의 행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선택일 뿐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주인공이 모두 원했던 결말이어서 그것은 그나마 위안이 들기도 했었다.
아파트의 계급 차이나 양육 문제 등 사회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와닿기는 했었지만 이야기 자체로만 놓고 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여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던 소설이었다. 결혼과 가정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출판사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