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캣 식당
범유진 지음 / &(앤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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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칠 수 있다고? / p.8

평소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다. 매체에 나오는 연예인만 보더라도 아마 내가 모르는 세계 너머에 일이 있겠지, 부자라면 이유가 있겠지, 다른 능력이 좋다면 나름의 노력이 있었겠지, 등 대상의 영혼이 바뀐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얻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그 사람의 운명이지 않을까.

부러움과 별개로 훔치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영혼이 바뀌면 지금 몸만 바뀐 상태에서 펼쳐지겠지만 말이다. 이는 단순하게 다른 외모나 조건 등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호기심이다.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나의 영혼으로 경험해 보고 싶다.

이 책은 범유진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전작이었던 <아홉수 가위>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짠내 나는 아홉수의 주인공이 할머니 집에서 보냈던 유쾌하고도 따뜻한 이야기는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전에 읽었던 소설은 단편 소설이었기에 장편 소설에서 펼쳐지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무대는 새벽 6 시 6 분 6초, 익선동의 한 장소에서 보이는 식당이다. 누군가는 김밥 지옥으로, 또 누군가는 카피캣 식당으로 보이는 이곳에 다섯 명의 사람이 들어온다. 각자 다른 사연과 환경을 가졌다. 공통점은 누군가의 삶을 훔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훔치고 싶은 이의 인생 음식과 레시피를 찾아야 하며,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식당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거짓말쟁이의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가진 내용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정현아로 스물다섯 살의 취업준비생이다. 좋아하고 있는 유일우의 열애설 상대이자 자신과 이름, 나이가 같은 연예인 정현아의 인생을 훔치기 위해 카피캣 식당을 방문한다. 정현아의 헤어숍으로 취업을 한 주인공은 그녀와 친해져 인생 레시피를 알아낼 계획이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유일우의 다른 모습과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너머의 진실을 알게 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작품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연예인 정현아는 누구에게나 따뜻한 인물이었으며, 막내라고 무시받던 주인공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한, 인터넷에서의 유일우는 팬들을 사랑하는 프로페셔널한 아이돌 가수이지만 이면에는 무서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주인공의 모습에서 안도했으며, 소설보다 현실적인 결말이어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만족스러웠다.

두 번째는 <돌고 도는 짜파게티>는 췌장암 3 기의 한 남자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진혁은 췌장암 3 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삶의 미련이 남은 듯했다. 이대로 죽을 수 없기에 카피캣 식당을 찾았다. 그것도 이십 대의 서바다라는 여자와 함께 말이다.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부모님을 대상으로 사기를 쳤으며, 어린 나이의 서바다를 꿰어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사랑에 눈이 먼 서바다는 최진혁에게 카피캣 식당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영혼을 바꾸겠다고 했다. 결국 둘은 인생이 바뀌었다. 그리고 최진혁은 암으로 사망한다.

다른 소설 역시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말을 선사해 주었지만 다섯 작품 중에서 가장 반전이 눈에 띄었던 소설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 또는 뿌리대로 거둔다는 조상들의 말들이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최진혁은 자신의 꾀에 걸리는 상황이 되었으며, 서바다는 최진혁의 머리 꼭대기에서 먼 수를 보고 있었다. 사실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영혼과 생명을 바꾼다는 게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막상 결말을 보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사실 식당을 주제로 독자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느끼는 소설들을 참 인상 깊게 읽었는데 따뜻함으로 주었던 그동안의 소설들과 다르게 차가움으로 경각심을 주었던 이야기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상력에 교훈까지 덧붙인 이야기들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범유진 작가님의 새로운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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