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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수밖에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5
최도담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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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러고 보면 나약하지. 너무 불안정해. / p.31
인터넷에서 올라온 글을 읽다 보면 선택이라는 게 막상 자신의 온전한 의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뉘앙스의 내용을 많이 읽게 된다. 처음에는 선택 자체가 당사자에게 책임을 주어지는 건데 그게 왜 의지에 반하게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는 여러 가지의 경우를 판단하거나 자신의 상황을 따져서 더 나은 최선을 만들 텐데 말이다.
막상 과거를 돌이켜 보니 나 역시도 내가 원하는 선택을 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타인의 압박과 어떠한 상황에서 마치 물처럼 흘러나는 선택을 했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나오더라도 온전히 만족스러움을 느낀 경험도 없다. 남이 보면 무덤덤하겠지만 늘 선택에 대한 불만을 느꼈다. 그래서 적어도 나에게 선택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던 것 같다.
이 책은 최도담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스토리 자체가 눈길을 끌었던 책이다.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줄거리를 예상했었다. 출판사의 다른 소설도 나름 만족스러움을 느꼈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이 연이라는 이름의 사람을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기섭이라는 남자를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계획하고 있다. 할머니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애정을 받고 있지만 이기섭이 주었던 고통은 누구보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듯하다.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만들었다. 우연히 마주친 상황에서 이기섭은 오히려 주인공을 비웃는다. 그 과정에서 연이라는 남자와의 관계, 이기섭이 살해된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참 흥미로웠던 이야기이다.
가정폭력의 트라우마가 한 시절의 끝이 아닌 인생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많이 보고 들었기에 무엇보다 주인공의 심정이 누구보다 깊이 와닿았다. 살인 동기에 대해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정감과 삐뚤어진 마음의 원인이 가정폭력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주인공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직위를 걸고 성범죄의 피해자인 학원생의 편에 서서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으며, 할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이기섭을 살해하려는 동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물론, 어머니에게 했던 행동들과 자신의 인생을 뒤흔든 사람이라는 점 역시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다른 의미를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기섭을 살해하는 것으로 자신의 불행과 그 과거를 끊기 위한 하나의 행동이지 않았을까. 수시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독백 부분에서 이러한 점을 많이 느꼈다.
여러 생각으로 읽던 중 마무리 부분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반전이 등장하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이기섭이 살해된 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살해되었다는 점에서 누가 실행했을지 궁금했었는데 범죄자는 진짜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그 지점에서 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뭉클함을 생기기도 했다. 어쩌면 주인공에게 세상에는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짧은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생각으로 인상 깊었던 소설이었다. 주인공이 했던 고민들이 나 역시 그 시절에 한번쯤 고민했을 법한 생각이어서 더욱 와닿았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겪었던 암흑의 과거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한 시기를 보냈겠지만 말이다. 가벼우면서도 울림이 있는 소설이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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