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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고미네 하지메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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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애들 생각은 도통 따라가질 못하겠습니다. / p.249
유행어 중 하나인 '중2병'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닌 대한민국의 중학교 2학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청소년들이 생각보다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에서도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나누기도 한다. 질풍노도 사춘기 시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위아래도 없이 무례하게 군다거나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경우를 매체에서 많이 보다 보니 더욱 부정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 나 역시도 중학교 2학년 시기를 겪었으며, 분명히 올바르게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도 있을 텐데 너무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이 책은 고미네 하지메의 장편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천사 한 문장을 보고 눈에 들어온 책이다. 솔직히 대한민국 사람 중 추리 소설 조금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 정도로 대단한 작가이다. 고등학교 수능 직후 소설에 빠져서 살았던 때가 있었으며, 추리의 눈을 뜨게 해 준 작가이기도 하다. 추리 소설을 이끈 스타 작가에게 영감을 준 소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큰 궁금증과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은 미유키라는 이름의 여학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겉으로는 질병에 의한 죽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미유키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괴상한 소문이 돌았다. 미유키는 임신을 했었고, 중절 수술을 받다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사실이었고, 미유키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임신시킨 남학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중 미유키가 다니는 학교에서의 독극물 도시락과 한 청년의 실종, 그리고 동급생 가족의 자살 등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각각의 사건으로 생각하던 형사와 사람들은 미유키의 죽음에서부터 연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사건들의 원인은 미유키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한 무리를 향한다.
제목의 의미가 참 궁금했던 책이었다. 사실 이야기와 제목의 연관성을 찾지 못해 읽는 내내 무슨 의미인지 의문이 생겼다. 그나마 미유키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했던 한 마디 정도가 유일하게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뿐이었다.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미유키의 죽음과 연달아 벌어지는 사건 자체에 집중하면서 읽었다. 등장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했으며, 미유키의 어머니에게는 딸을 잃은 슬픔이, 미유키의 아버지에게는 딸을 그렇게 만든 자들의 분노와 자신의 명예를 잃지 않으려는 이중적인 모습이 느껴질 뿐이었다.
사건이 하나씩 발생할수록 등장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반감이 들었다. 초반에는 미유키 아버지의 심문에도 당돌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아이들이라는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 약간은 무례하다는 생각으로 기울게 된 계기는 형사들에게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형사를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솔직하게 진술을 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되 일부는 숨겼다. 사실 이는 등장하는 무리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미유키에게도 해당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당차게 말하는 아이들로 보았다. 가면 갈수록 아이들이 약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이어가면서부터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보면 연관성이 하나 없는 사건들이었기에 이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는데 하나의 선으로 모이는 순간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범인이 하나로 이어진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조차도 아니었기에 사건들을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대단함을 느꼈다. 거기에 처음부터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제목의 의미가 펼쳐지는 순간 이마저도 감탄했다. 개인적으로는 여운이 꽤 오래 유지가 되었던 것 같다. 추리 소설에서 촘촘한 전개와 묵직한 의미로 남는 것이 참 좋았다.
읽으면서 청소년들의 생각을 조금 더 깊이 생각했었다. 소설에서는 청소년들과 어른의 생각 차이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우선, 형사부터가 자신들의 자녀들과의 문제를 언급하며, 청소년들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류의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생각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처음에는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했기에 청소년들이 약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갈수록 그들의 말처럼 모르고 있으면서 마치 그 시절을 겪었기에 아는 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형사가 마지막에 이르러 그들에게 동정심과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 같다.
마지막 내용을 보고 과연 아르키메데스도 자신의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지점이 묵직하게 남았다. 이는 조금은 철없이 무례한 그들이 주는 어른들을 향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그들은 잘못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의 책임 소재를 그들이 온전히 안고 가는 것이 맞은지 묻는다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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