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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기피증이지만 탐정입니다
니타도리 케이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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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는 기시감이 있다. / p.19
극강의 내향형으로 외부로 나가는 일 자체가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에 사람을 만나는 일 또한 즐거움보다는 긴장을 동반한 일이다. 가끔은 만남보다는 업무의 연장선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오래 봐서 편안한 지인을 만난다면 조금이나마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겠지만 세상은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직업의 특성상 매번 새로운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는 게 주된 일이다 보니 에너지는 늘 고갈 상태를 달리고 있다.
그런 나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면 대인기피증이 아닐까 싶다. 생존적 본능과 계획적 성향이기에 사람 만나는 것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생존적 본능이라고 하면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덜 소비하기 위한 이유이며, 두 번째는 독서를 하거나 리뷰를 하는 등의 개인적인 일도 많기 때문에 계획이 틀어져 받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기에 대인기피증으로 정의를 내리기 애매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니타도리 게이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에서부터 동질감이 확 들었다. 주인공과 비슷한 성향일 것이라는 긍정적인 느낌도 들었지만 그것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탐정이 대인 기피증을 가지고 있다는 모순적인 제목에 끌렸다.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누구보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복지 쪽의 직종을 가지고 있다는 게 공통점으로 보였다. 탐정이라는 일과 대인 기피증이라는 장애물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후지무라 미사토는 대학생이다. 법학과를 전공하고 있으며,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처럼 보였다. 소설은 과 오리엔테이션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이 되는데 미사토는 다른 동기들의 소개를 듣기보다는 긴장감과 자신의 멘트에 신경을 집중한다. 나름 무난하게 끝난 듯하지만 자책한다. 이후 강의실의 우산 하나를 통해 주인을 추리하는 사건과 노래방에서 술을 먹은 친구의 사건, 옷가게에서의 밀실 소실 사건, 축제에서의 축제 도난 사건, 담배방에서의 컴퓨터 도난 사건 등 소소한 사건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탐정이라고 해서 조금은 큰 사건을 다룰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내용 자체는 소박하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대학생이라는 특성상 큰 사건을 추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보인다. 조금은 기대와 다르게 진행이 되었지만 그 소박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후지무라를 보면서 추리 능력은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어 감탄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애초에 첫 시작이었던 우산 사건만 보더라도 나라면 관심 안 가지고 그냥 지나갔을 듯한데 후지무라는 우산을 돌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넘어 우산을 가지고 온 주인의 지역까지 유추하는 등 꽤나 정성을 보였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참 흥미롭게 다가왔다. 첫 번째는 대인기피증의 특징을 나열한 부분이다. 총 다섯 가지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각 장에서 드문드문 '대인기피증은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명시하는 듯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후지무라 스스로의 경험에서 나오는 느낌이기는 하겠지만 추리보다 이런 내용이 더욱 흥미롭게 와닿았다. 내용의 일부를 빌리면 대인기피증은 인파에 약하다고 표현한다. 인파 속에서 자신의 의사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강인함과 적극성, 사교성이 필요한데 대인기피증에게는 이들 모두가 없다는 내용이다. 후지무라의 생각과 특징이 큰 공감이 되었다.
두 번째는 후지무라의 성격에 대한 부분이다. 스스로를 대인기피증으로 정의를 내리면서 다양한 설명을 해 주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인기피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주인공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상대방의 눈을 피해 대답한다거나 옆에 사람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친구의 옆구리를 찔러 의사를 전달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낯을 많이 가리는 듯하지만 추리를 하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려고 하는 점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찾아 주겠다고 혼자 추리를 하는 부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친구가 술에 취했을 때 이를 세심하게 관찰했던 부분, 섣불리 절도 용의자로 낙인을 찍지 않으면서 친구를 감싸는 부분이 그랬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나타나는 성격이기는 하겠지만 이야기 안에서 따뜻함을 보았다. 대인기피증이 생긴 원인이 된 이유에서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탐정이 사람을 피하면 어떻게 되는지 걱정을 했었던 게 사실인데 생각보다 후지무라는 잘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큰 문제까지 해결하는 등의 용기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 또한 후지무라의 성장이라고 느껴졌다.
추리 소설이기는 하지만 대인기피증이라는 특징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추리 소설을 읽는 스킬이 부족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또한, 일본 문화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기에 트릭 자체가 단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우산의 주인을 찾을 때 지역별 눈이나 비가 오는 특징으로 잡아내는 부분이 그랬다. 그러나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고 또 쉽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주인공을 향한 동질감 때문인지 아니면 소설의 몰입 때문인지 몰라도 다음 시리즈가 있다면 기대가 될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후지무라를 통해 나 역시도 현실에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스킬과 추리 소설의 매력을 느꼈던 시간이어서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