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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터 - 좋은 이별을 위해 보내는 편지
이와이 슌지 지음, 권남희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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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눈이 내린 듯한 느낌도 든다. / p.186
직접 보지는 않지만 머릿속에 영상이 자연스럽게 재생되는 영화들이 생각보다 많다. 크게 두 가지의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나 영화 서적에서 본 경우이다. 자주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 관련 프로그램을 유튜브나 재방송으로 가끔 시청하다 보니 보지 않았더라도 줄거리를 알게 된다. 천만 영화 대부분 그렇다. 나름 확실한 장르 호불호가 정해진 편이어서 아무리 유명한 영화라고 해도 불호 영역에 들어가면 안 보는데 이미 줄거리와 결말을 알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
두 번째 경우는 프로그램에서 많이 회자가 되었을 때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오마주가 많이 되었거나 자료 화면으로 과거의 영화 화면을 보게 될 때가 많다. 태어나기도 전에 상영했거나 기억하지 못할 어린 시절에 나온 영화가 대부분 그렇다. 스스로 돈을 지불해 영화를 보았을 때가 거의 중학교 시점 정도 되었을 텐데 이전에 나올 경우에는 굳이 찾아서 보지 않는 이상 볼 기회가 없다. 그러나 익숙하게 봐온 배경의 영화라면 보지 않아도 어떻게 끝나는지 다 알게 된다.
이 소설의 이와이 슌지의 장편 소설이다. 서두에 말한 케이스 중 두 번째 경우에 속한 이야기이다. 아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눈이 쌓인 어느 공간에서 "오겡끼 데스까"라고 외치는 여자를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램에서 이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았다. 실제로 영화는 본 적이 없지만 그 풍경이 너무 좋아서 친한 지인과 함께 일본 오타루를 방문했을 정도이다. 영상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원작 소설이라는 문구에 끌려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와타나베 히로코로 고베에서 살고 있는 이십 대 중반의 여성이다. 그녀에게는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가 있었는데 등산을 하던 중 조난 당해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약혼자의 집에서 본 학창 시절 앨범을 보게 된다. 약혼자의 학창 시절 주소는 이미 국도로 변한 곳이었기에 앨범 뒷면에 적힌 주소로 돌아오지 않을 편지를 보냈는데 그 이름으로 답장이 왔다. 놀란 히로코는 다시 답장을 보내면서 서로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편지를 통해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의 학창 시절 추억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초반에 설정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국도로 변한 집에 보낸 편지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 상황을 추려서 상상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도로에 사는 자연인이나 도로가 보내지 않는 이상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답장을 받는다는 게 아무리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아마 와타나베 히로코는 이러한 부분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리워하는 옛 연인에 대한 편지면 아마도 궁금증보다 설렘이 더욱 큰 상황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내용 자체에 의문을 가지면서 읽다 보니 후지이 이츠키의 감정에 공감이 되었다. 특히, 소설에 나오는 와타나베 히로코의 답장이 후지이 이츠키로 하여금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인물로부터 누구냐는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은 뭔가 싶었을 것이다. 장난 편지인 듯하면서도 답답한 상황이 너무 이해가 되었다.
설정의 의문이 풀렸던 것은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부터이다. 이해조차 되지 않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이 될지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했는데 나름 납득이 갈 수 있게 전개가 되어서 그때부터는 몰입할 수 있었다. 물론, 상황 자체가 완전히 자연스럽다고 하기에는 우연의 일치가 너무 많았다는 점은 조금 답답했지만 이 역시 넓게 포용하면 수용이 가능했다. 현실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한 여자의 그리움에 초점을 맞춰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라고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와타나베 히로코의 전 연인이었던 후지이 이츠키가 준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물을 통해 전 연인의 학창 시절과 추억을 듣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한 사람을 주제로 서로 과거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점도 좋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동년배의 친구들 또는 펜팔 관련 내용이 실린 잡지에서 보게 된 친구와 짧은 기간 펜팔을 주고받았던 적이 있는데 그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편지를 보낼 때의 두근두근 긴장감과 편지를 기다릴 때의 설렘이 참 좋았는데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로맨스의 설렘뿐만 아니라 과거 추억까지 소환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소설이었다. 거기에 이 책을 읽었던 순간의 바깥 풍경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이 쌓여 있기에 새로운 추억 창고에 저장이 될 것 같다. 더불어, 지금까지 겨울 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딱 하나 있었는데 이제 또 하나가 추가될 정도로 인상 깊게 남았다. 이제는 영화의 그 장면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질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