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것부터 먹고
하라다 히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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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내세우는 사람만큼 무서운 건 없다. / p.41

음식을 주제로 하는 소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이는 일반 힐링 소설뿐만 아니라 미스터리나 호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뻔할 것 같다는 편견을 가지고 읽었지만 내용부터 와닿는 지점까지 전부 다르다는 생각에 놀란다. 애초에 음식의 종류가 많은 것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의 주제도 다양할 텐데 아직까지는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는 반성도 든다.

이 책은 히라다 히카의 연작 소설이다. 낮술이라는 작품이 꽤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올해 책을 이렇게 많이 읽기 전까지는 음식을 주제로 한 소설 자체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읽지는 못했는데 괜히 관심이 생겼다. 항상 음식 하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따스함이라는 게 공통적으로 느껴진 부분 중 하나이기도 했다. 미스터리 소설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힐링을 느끼고 싶다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선택하게 된 책이다.

소설은 의료 스타트업 회사인 그랜마의 대표인 다나카는 회사 직원들에게 새로운 도우미를 채용하겠다고 밝혔고, 가케이라는 도우미가 그랜마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더불어, 가케이의 비밀도 이야기 중 하나에 등장한다. 그랜마를 설립하고 일군 다섯 명의 동창들은 회사에 대한 불만 또는 자신의 비전, 쉽게 터놓을 수 없는 개인사 등의 각각의 고민을 가지고 있는데 가케이는 무심하면서도 따뜻하게 이를 야식으로서 위로해 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타미와 마이카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타미는 회사를 이직하려고 고민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꽤 좋은 회사에서도 면접을 요청할 정도로 큰 인재인듯 하고, 현재 만나고 있는 애인의 부모님 쪽에서도 대기업에 들어가야 결혼을 허락해 주실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와중에도 섣불리 회사를 옮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민하고 있는 이타미에게 가케이는 도미밥과 반찬을 내밀면서 회사에 남을 것을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능력과 상황 자체가 이직을 말하고 있음에도 이타미가 이를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읽는 내내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이타미였다면 고민이라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명확할 텐데 말이다. 아마도 회사에 대한 미련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같이 회사를 일군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일까. 정답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이타미가 되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무엇보다 현실과 이상,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타미가 되고 보니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에 와닿았다.

마이카는 필리핀 혼혈의 사람이다. 보통 일본인에 비해 약간 개방적인 성향을 가진 듯하다. 사람들로부터 필리핀에서 와서 그런지 개방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읽는 내내 마이카에게 느낀 감정도 그랬다.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가케이에게 조금은 편하게말을 놓는 것도 그랬고,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고 시원하게 느끼는 부분도 그랬다. 물론, 다나카는 이를 마이카에게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뭔가 읽는 내내 숨겨진 아픔을 보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누군가는 불행을 크게 생각하지 않지만 마이카는 약간 스스로의 불행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는 아마 자신을 키워준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마이카의 어른으로서의 모습과 투정을 부리고 싶은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 겹쳐서 보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마치 이를 알아차린 가케이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덮으면서 든 생각은 제목은 잘 지었다라는 것이다. 제목 자체가 말을 하다가 마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지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쩌면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그랜마의 직원들에게 가케이가 '우선 이것부터 먹고 마음 풀자.'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내용도 보면 직원들에게 야식을 먼저 주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이게 딱 맞아 떨어져서 나도 모르게 납득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랜마의 회사 이름 유래처럼 친할머니처럼 직원들을 챙기는 가케이의 모습에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리뷰를 이렇게 적으면서 하라다 히카는 <할머니와 나의 삼천 엔>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네의 한 청년을, 손녀와 며느리를 따뜻하게 생각해 주었던 고토코 할머니의 인상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렇게 따뜻한 소설을 통해 또 다른 할머니인 가케이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어서 행복했다. 조만간 낮술이라는 제목의 소설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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