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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빛나는 ㅣ 안전가옥 쇼-트 15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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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는 게 내가 되는 것이라는 그 말. / p.76
이 책은 김혜영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제 믿고 보게 되는 안전가옥의 쇼트 시리즈 중 하나이다. 지난달에 읽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빠르게 다른 소설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았다. 사실 김혜영 작가님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는데 그래도 항상 보던 쇼트 시리즈이기 때문에 새로운 작가님의 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을 안고 읽게 되었다.
이 소설집은 세 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첫 편인 <열린 문>은 한 남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남매는 밥 하나 먹는 것도 어머니의 눈치를 본다거나 부모님으로부터 양육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남매의 첫째인 오빠가 갑자기 도둑을 때려잡겠다고 하면서 현관문을 연다. 제목처럼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소설이 끝나자마자 순간 멍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현관문에 드러나는 존재에 대해 상상하다가 결국은 아동 학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느끼게 했다. 개인적으로 라면을 끓였다가 어머니께서 일어나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몰래 라면을 생으로 먹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아이들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편인 <우물>은 액취증을 가진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주영은 액취증 환자였다. 근처에만 가도 알 수 없는 냄새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자는 늘 혼자였다. 그러던 그녀에게 친구가 생겼다. 효민이라는 친구인데 그녀는 비염이 심해 주영의 강한 체취를 맡지 못했다. 둘은 서로의 신체 증상에 개의치 않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우정의 관계도 효민이가 수술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진다. 수술을 하고 난 이후 처음 만난 자리에서 효민은 구토를 한다. 주영은 자신의 냄새를 맡기 시작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를 도망쳤으며, 또 혼자가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검은 물을 가지고 오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검은 물을 마시고 나니 냄새가 사라짐을 느꼈고, 주영에게 그 사람은 삽과 우비를 주면서 산으로 안내했다.
마지막을 읽고 나니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주영이가 고립된 환경에 대해 연민이 들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질병으로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었고, 욕을 먹거나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안타까웠다. 그러다 검은 물을 주는 여자가 등장하면서부터 공포의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졌다. 이는 분위기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공포이자 호러였다. 호의로서 주영에게 접근해 검은 물을 전달해 주었지만 자신이 그만큼 해 주었으니 너 역시도 그 댓가를 지불해야 된다는 논리를 보면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무서움을 피부로 느꼈다.
세 번째 편인 표제작 <푸르게 빛나는>은 알 수 없는 푸른 빛의 벌레와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여진과 규환은 신혼 부부로 경기도 외곽의 새로운 아파트에 살림을 차리게 됐다. 그 와중에 좋은 일로 여진이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진에게 푸른색을 가진 벌레가 눈에 보인다. 이를 규환에게 알려 방역 업체를 부르고, 커뮤니티에 이를 알렸지만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규환마저도 말이다. 벌레가 등장하면서부터 규환과 여진의 관계는 조금씩 삐그덕거리기 시작하고 커뮤니티에는 여진이 본 벌레를 연구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인간의 자본주의를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여진의 불안감이 이해가 되었다. 아무래도 임산부이기 때문에 작은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벌레가 등장했다면 나 역시도 여진처럼 행동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여진이 너무 과하다고 느껴졌고, 벌레를 연구하는 한 남자의 존재도 참 뭔가 말할 수 없이 부정적으로 보였다. 읽어가면서 아파트 집값 때문에 이를 쉬쉬하면서 넘어가는 입주민들과 규환의 태도에 정이 떨어졌다. 전체적으로 뭔가 마음을 주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없어서 다른 의미로 답답하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인물과 별개로 스토리 자체는 현실감이 느껴져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를 가벼우면서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 소설은 긍정적인 의미로 다소 무겁게 읽었던 것 같다. 인간의 파멸과 이기심, 자본주의 등 부정적으로 느껴졌던 단어들을 내내 곱씹었다. 스스로 경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혜영 작가님의 단편이 또 나온다는 소식을 책을 덮고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소설집에서 느껴지는 세계관이 다음 편에서는 얼마나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