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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료하는 당신만의 물망초 식당
청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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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할 수 있을까? / p.42
주변 지인들에 비해 편식이 없는 편이다. 막창이나 곱창, 홍어, 순대 등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들이 대체적으로 좋아하거나 먹는 음식이어서 바깥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자유롭게 이것저것 먹을 수 있다. 식사 약속을 한 상대가 나의 식성을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리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같이 식사를 하기 편한 사람 중 하나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은 나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집에서 항상 같이 식사를 하는 가족들은 이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다. 음식에 자주 들어가는 재료를 참 싫어한다. 어렸을 때에는 파, 양파를 아예 못 먹는 상황이었기에 김치볶음밥에는 늘 햄과 김치만 들어갔다. 지금은 생으로 먹을 정도로 나이가 들어서 그나마 낫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결정적으로 다진 마늘을 아직도 안 먹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는 늘 하소연을 하신다. 한국 음식에 다진 마늘이 빠지면 대체 어떤 음식을 만들 수 있느냐고 말이다. 이 부분은 참 죄송하지만 눈에 다진 마늘이 보이는 순간 그곳으로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안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청예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음식점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보통 지금까지 보았던 식당 표지와 다른 심플한 표지여서 눈길이 갔는데 심리적 편식을 고쳐 준다는 내용에 관심이 갔다. 사실 편식에 크게 개의치 않을 뿐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억지로 음식을 먹게 하는 것 자체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편식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물망초 식당의 주인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문망초는 어머니의 금귀비 정찬을 물려받기 위해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총 일곱 명의 고객들의 심리적 편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해 서명을 받아야 이를 물려 준다는 것인데 어머니의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기에 망초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를 완수하고자 한다. 빈 공간에 물망초 식당이라는 임시 가게를 개업해 손님의 사연을 듣고 난 후 음식을 제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렸을 때 급식실과 부모님으로부터 김치에 대한 강요를 받아 성인이 된 지금까지 김치를 먹지 못한다는 우현이라는 인물부터 시작해 이별에 대한 상처로 족발을 먹지 못한다는 남자, 가난함을 숨기기 위해 더욱 강한 척하는 여성, 취업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모에게 상처를 받은 아르바이트생까지 현실적인 손님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공감되었다. 거기에 이들의 심리적 편식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문망초의 진심과 고민들이 어울어져 더욱 와닿았다.
하나하나 너무 다 좋았지만 꽁치 완자, 닭 수제비, 채식 떡볶이 사연이 가장 공감이 되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요리해 준 꽁치가 너무나 지긋지긋해서 먹지 않는다는 손님은 가난의 상징을 꽁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거의 생각들이 겹쳐지면서 걸걸하고도 투박한 말투와 용모 등으로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망초는 고민 끝에 꽁치로 완자를 만들어 손님에게 내놓는다. 꽁치 또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도 했다. 손님은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꽁치를 먹게 되었다.
닭 수제비 사연은 무지개 다리를 건넌 강아지에 대한 미안함으로 한 중년 남자의 사연이다. 손님은 강아지에게 닭을 많이 주었는데 애완견 모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사람 음식을 주면 안 된다며 조언했었다. 강아지는 12 년을 살다 떠났음에도 자신이 간식과 사람 음식을 주어 평균 수명보다 일찍 갔다는 죄책감으로 이후로 닭을 먹지 못하고 있다. 망초는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 할머니의 도움으로 닭 수제비를 대접했으며, 할머니의 조언으로 들으면서 손님은 생각을 바꾸게 된다.
채식 떡볶이 사연은 이모로부터 상처를 받은 아르바이트생의 사연이다. 손님은 망초가 자주 보았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망초와 동갑이기도 한 손님은 이모가 준 떡볶이를 먹으면서 서른이 되어도 밥값을 하지 못한다면 한심하다는 등의 애정 섞인 인신 공격을 듣는다. 이후로부터 떡볶이도 못 먹게 되었다. 누구보다 친절하고도 상냥한 사람임에도 자존감이 떨어진 모습에 이를 북돋고자 망초와 친구들은 이벤트를 연다.
강한 척하는 꽁치 완자 손님의 삐뚤어진 마음과 닭 수제비 손님의 죄책감, 채식 떡볶이 손님의 취업준비생으로서의 자존감은 나의 과거를 보는 듯했다.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던 순간이, 몇 년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넌 강아지의 모습이, 취업하지 못한 나를 한심하게 생각할 친척들의 시선이 떠올라 마음이 아렸다. 심지어 울컥해 잠시 덮고 읽기도 했었다. 그만큼 머리와 마음을 모두 기억에 남는 사연이었다. 그밖에도 가족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문망초의 마음과 이런 문망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동희 등 의지가 되어 주는 인물들은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역시 사람은 도움이 없이 온전히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모든 등장 인물이 다 좋았다.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가 공감이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별 다섯 개를 줄 정도로 감정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소설은 드물었다. 내내 문망초가 되어 손님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요리사가, 각자의 고민을 안고 물망초 식당을 찾았던 손님이, 어려움을 겪을 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동희가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푹 빠져서 읽게 된 소설이었다. 읽고 나니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고민과 상처도 치유받는 느낌도 들었다. 하반기 최고의 소설로 뽑을 수 있을 정도로 하나하나 인상적이었기에 당분간 이 여운을 가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