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죽음들 -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가 과학수사에 남긴 흔적을 따라서
브루스 골드파브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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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대한 추구는 가차 없어야 한다. / p.365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사건을 파헤치는 중요한 단서들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보게 된다. 그냥 보기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환경인데 거기에서 범인의 시그니처를 알아 낸다거나 피해자의 시신에서 범인의 흔적이 보인다거나 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마 나처럼 둔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관련 직종으로서 자격이 박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브루스 골드파브의 도서이다. 아무래도 요즈음 읽는 책들이 본의 아니게 죽음으로 묶이는 경우가 있다. 소설도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관심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거기에 지금까지 접한 것은 한국의 법의학자분들이다. 해외의 과학 수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책의 주인공은 미국의 법의학자인 프랜시스 글래스너 리라는 여성이다. 리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빠와 풍부한 교육을 받았다. 오빠는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리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에 자신이 원하는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은 여성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평범한 여성들처럼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아갔지만 결국 남편과 이혼했다. 그러다 매그리스라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매그리스는 검시관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법의학에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의문이 있는 죽음을 조사하는 업무를 하는 코로너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코로너들은 의학에 대한 지식을 갖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일까지 하기도 했다. 결국 마땅히 밝혀져야 하는 죽음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애먼 사람이 없는 죄값을 치루는 일까지 벌어진다. 매그리스와 리는 이를 개혁하고자 노력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처음에는 법의학자라고 해서 큰 기대를 했지만 프랜시스 글래스너 리는 내가 생각했던 인물과는 조금 다른 유형이었다. 법의학과 관련된 전공을 대학에서 배우고, 수련이나 실습 등을 거쳐 경찰관 또는 의사로서 활동하는 내용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리는 대학교도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의학이나 법학 등의 전문적인 지식은 매그리스와 책 등을 통해 독학 아닌 독학을 해왔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다.

거기다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에 법의학과 설치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원하는 바에 대한 거절을 하거나 난색을 표했을 때에는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하면서까지 말이다. 장학금을 가지고 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강압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하버드 대학교 입장에 조금 더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중반을 넘어갈수록 리의 열정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특히, 경찰들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던 부분은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동안 법의학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경찰들은 그동안 사건 현장을 훼손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검시관의 요청에 비협조적으로 응하기도 했었다. 리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살인 현장을 미니어처로 축소한 교본들을 만들었고, 이를 활용해 경찰들을 위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경찰들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했으며, 숙식은 누구보다 부족함이 없도록 했다. 그렇게 법의학을 알렸다. 주 경찰서에서는 이러한 점을 높이 사 리에게 경감이라는 직위를 주기도 했다. 큰 열정을 쏟았던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모르게 법의학을 위해 노력할 수 있었겠지만 리는 그렇지 않았다. 누구보다 바깥에서 압박하거나 로비를 해서 법의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를 실행하고자 했다. 매그리스의 '인간 장기의 아름다움'이라는 한마디에 법의학에 돈과 시간, 명예 모든 것을 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법의학에 대한 열정과 뜻하는 방향이 있었기에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도 미국의 법의학에 대한 부분은 부족한 듯하다. 그래도 리가 있을 당시에는 원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되었든 나아갔지만 현재는 없기 때문에 더욱 난항을 겪고 있다. 아직도 코로너 제도를 시행하는 곳도 있으며, 대학교에서도 법의학을 가르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크게 발전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직업인은 무조건 엘리트 코스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위대한 업적을 쌓는 것은 일에 대한 열정과 명확한 방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랜시스 글래즈너 리에게서 받은 영감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누구보다 법의학을 진심으로 생각했던 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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