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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는 사람들 - 영국 최고 법정신의학자의 26년간 현장 기록
리처드 테일러 지음, 공민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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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평가를 바로 내가 하게 된 것이다. / p.16
즐겨 보는 프로그램들이 독서만큼이나 편향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범죄학과 심리학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사실 법의학자, 범죄심리학자 등의 직업도 매체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다른 직업보다 그 직업들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 흥미를 가졌더라면 장래희망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법의학자나 범죄심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이 책은 리처드 테일러의 범죄와 관련된 서적이다. 매체로 친숙한 분인 박지선 교수님의 추천 도서라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거기에 법정신의학자라는 직업 자체에 관심이 갔다. 범죄 이야기 자체에 늘 흥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저자는 26년간 법정신의학자로 활동하면서 영국, 미국 등 서양의 다양한 국가에서 범죄자를 만나 면담과 치료를 해왔다. 성적 살인과 영아 살인, 연인을 살해한 남자와 여자, 정신 질환을 가지고 사람을 살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잘못된 믿음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까지 생각보다 광범위한 사례가 등장했다.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뉴스나 매체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면 뒤로 갈수록 쉽게 볼 수 없는 테러 범죄자들의 이야기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읽으면서 그들의 심리와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조금은 실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실 법정신의학자라는 직업이 가장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알고 싶다, 표리부동, 당신이 혹하는 사이 등 범죄심리학자 또는 프로파일러의 직업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직업과 차이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읽으면서 느꼈던 차이점은 '의학'이라는 부분이 포함되는지 여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나 범죄자를 만나 심리를 파헤치는 것은 맞지만 정신의학 측면으로 풀어내는 게 개인적으로 느낀 차이점이었다. 물론, 내용을 읽다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하기는 한다. 거기에 개선에 필요한 약물이나 인지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다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연인이나 배우자를 살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와 여자를 따로 분리해 사례를 정리했는데 이유가 다르다는 점이 와닿았다. 남자는 가정 폭력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주된 이유는 연인이나 배우자로부터 모욕감을 받았다거나 다른 이성과 있는 모습을 보고 질투를 느끼는 등의 모습이었다. 읽으면서 동등한 입장이 아닌 권력을 가진 아랫 사람으로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바람을 피우는 상황에서 상대를 구속하려는 가해자들의 사례는 말을 잃게 했다.
반면, 여자의 살해 의도는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었다. 가정 폭력으로 고통을 받다 한계치에 이르렀을 때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칼을 휘두루는 것이다. 보통 그렇게 남자를 살해한 여자들은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로서 저자와 만나 상담을 받았다. 물론, 모든 사례가 다 그렇다는 점은 아니었겠지만 주요 이유를 보면서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자의 이모 사례가 책 내용에 수시로 등장한다. 이모는 저자의 사촌이자 이모의 자녀를 살해한 적이 있고,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읽는 내내 저자가 법정신의학자로 진로를 결정하는데 이모의 영향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가족의 어두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펼쳐 보이는 게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결국 이모와 다른 사촌들도 안 좋은 결말을 맺게 되었지만 저자의 시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미국과 영국 등의 사례가 등장하지만 테러를 제외한 다른 살인 사례들은 대한민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공감이 되는 사례들도 있었다. 가해자들의 정신을 파헤친다고 하지만 아마 평생을 살아도 다른 이들의 생명을 훔친 범죄자들의 심리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정신 질환이 있다는 사실이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한 합리화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은 여전하다.
책을 덮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단 한 가지의 바람이 자리 잡았다.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지 않는 사회, 목숨을 빼앗은 범죄자가 정신 질환을 이유로 감형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