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이은주 옮김 / 푸른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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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한한 해변에서 모래알을 찾고 있다. / p.365

어렸을 때에는 가끔 엉뚱한 가정을 할 때가 많았다. 특히, 책을 보면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편이었다. 현재는 시간이 흐르고 사회의 때가 많이 묻은 사람이어서 누구보다 헛된 상상을 하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누가 봐도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꼬마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은 블레이크 크라우치의 장편 소설이다. 소재 자체가 흥미로웠다. 느낌으로 고를 때가 많기는 하지만 줄거리를 보고 이끄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이 딱 그 케이스였다. 나의 모습을 한 나에게 납치가 되었다는 설정에 관심이 갔다. 특히, 어렸을 때 했었던 허무맹랑한 생각 중 하나가 다른 세상에 나의 얼굴을 한 누군가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나름 공감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지역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제이슨은 아내인 다니엘라, 십 대 아들 찰리와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남성이다. 과거 물리학자로서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다니엘라의 임신으로 이를 포기하고 결국 가정을 선택했다. 아내 역시도 촉망 받는 화가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으나 제이슨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전업 주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제이슨과 다니엘라, 찰리는 서로에게 충실하면서 단란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친구의 수상 소식을 들으면서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친구의 수상 파티를 축하해 주고 오는 길에 제이슨은 복면을 쓴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한다. 눈을 뜨니 모르는 한 교수가 말도 안 되는 설명을 하면서 자신을 붙잡고 있다. 다니엘라와 찰리에게 돌아가고 싶었던 제이슨은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곧 잡혀 다시 돌아온다. 무기력한 생활을 하면서도 가족을 생각했던 제이슨은 계속 가족을 찾아 나설 방법을 찾고, 소설은 이러한 제이슨의 여정과 납치된 비밀을 알게 된다. 

제이슨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 참 화목한 가정이다. 무엇보다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역할, 거기에 아내 역시도 남편과 같은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뭔가 묘하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제이슨에게서 과거 선택으로 이룬 지금 환경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가족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을 테지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가지고 있는 듯했다. 내내 가족을 생각하는 모습들을 보이기는 했지만 어느 한 편에서는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막연하게 다른 시공간에서는 나의 모습을 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가정을 했었던 때가 있었기에 그때의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제이슨을 예로 든다면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 가족이 아닌 커리어를 생각했던 제이슨 2라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소설에서는 전염병으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제이슨과 다른 직업을 가진 제이슨이 등장한다. 과연 나의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능력치의 내가 등장한다면 그를 막연하게 부러워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지금의 나보다 어려운 상황의 나라면 측은함이 들었을 것 같다.

소재 자체도 좋았지만 제이슨의 생각이 가장 인상 깊었다. 선택이라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고 하거나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라는 우물에서 살고 있는 물고리 한 마리에 불과하다는 예시 등 다소 철학적으로 느낄 수 있는 혼잣말 또는 말들이 자주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진짜 이상한 미치광이의 말이라고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안에서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은 결과는 나오기에 일생에서의 많은 선택은 그저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제이슨이 과거 선택에 대한 옅은 미련에 대한 죄로서 다중 우주에 갇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소재 자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SF 소설이기 때문에 이론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다. 다중 우주라든지 양자역학의 경우에는 전혀 지식이 없는 물리학 이론들이어서 관련 내용은 나름 어렴풋이 해석하는 느낌으로만 읽었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조금 더 풍부한 이해를 하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쉬울 것 같다. 아마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흥미로운 이야기여서 읽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고, 시나리오 작가인 저자의 경력처럼 제이슨를 둘러싼 이러한 사건들이 하나의 영화처럼 재생이 되었다. 마치 다른 제이슨들이 쫓는 장면은 하나의 액션 영화처럼 그려졌고, 다중 우주를 넘어가는 장면들은 스케일이 큰 SF 영화처럼 보였다. 어려운 이론이 나왔음에도 그나마 쉽게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상상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SF의 관심을 떠나서 초보부터 고수까지 전부 만족할 수 있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보에게는 스펙타클한 스릴러의 쫄깃한 묘미를, 고수에게는 다른 차원의 다중 우주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스릴러 소설처럼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되었지만 SF 소설의 매력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영상화로 펼쳐지는 이 소설이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다. 과연 내가 그리는 이 스케치 수준의 영상들이 색을 입는다면, 얄팍한 지식으로 이해했던 다중 우주의 큰 세계들이 자본을 들이면 어떤 모습으로 탄생이 될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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