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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가 제철 ㅣ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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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나라는 꼭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 정신을 차리지. / p.61
회를 참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생각하고 먹는 편은 아니다. 생선의 종류를 잘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연어나 참치처럼 색깔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에는 쉽게 구분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회를 많이 먹었던 사람이면서도 광어와 우럭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색깔이나 구분되는 특성이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아직 구분할 정도의 큰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다. 회는 그저 초장의 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안윤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제 트리플 시리즈는 믿고 보는 편이다. 최근에 나오는 작품 순서대로 읽고 있기는 하지만 여유가 될 때마다 하나씩 구매해서 모으고 있다. 그러다 최신 작품으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처음 듣는 방어라는 생선이 제목에 들어가 있어서 더욱 궁금증이 들었다.
총 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인 <달밤>은 화자가 언니라고 불리는 인물에게 소애와의 일화를 풀어내는 형식의 구어체 소설이다. 화자는 소애를 소개하고 일상을 말하면서도 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주된 내용은 소애가 육개장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생일상에 육개장을 끓여서 올렸고, 같이 축하한 이후 이를 언니의 제삿상에 올린다는 이야기이다.
표제작이자 두 번째 작품인 <방어가 제철>은 화자, 오빠인 재영, 오빠의 친구인 정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세 사람은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왔는데 화자는 오빠 친구인 정오를 잘 따르고 있었고, 정오도 화자를 잘 챙겨 주었다. 그러다 재영이 세상을 떠난 후 정오와의 관계는 끊어졌다. 그러다 화자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고 네 달이 지나 정오가 재영에게 연락을 해왔다. 당시 겨울이었는데 정오는 화자를 데리고 횟집에 데려가 방어회를 먹는다. 이후 둘은 계절에 한 번씩은 만났으며, 겨울에는 늘 방어를 먹으러 갔다. 그러다 그렇게 지낸 지 삼 년 정도 지나 둘은 다시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기게 되었다.
세 번째 작품인 <만화경>은 화자인 나경, 나경의 집주인 숙분, 숙분의 친한 지인 단심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나경은 이혼 이후 새로 이사온 집에서 숙분을 만난다. 숙분은 나경을 창문에서 바라보는 등 감시하는 듯한 모습들을 보이고, 나경은 이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것만 제외하면 다른 부분들은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단심이 그곳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 단심은 건물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고, 자연스럽게 나경과도 가까워진다. 어느 날, 숙분이 연락이 되지 않자 초조한 시간을 보내던 중 단심으로부터 나경이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전 세입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세 작품 모두 좌절이나 사람의 부재를 관통하고 있다. 달밤에서는 언니의 죽음, 방어가 제철에서는 오빠의 죽음, 만화경은 나경의 이혼이 그렇다. 이를 어떻게 애도하거나 극복하는지 초점에 맞추고 있지만 읽는 내내 회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다. 그것도 사람으로 인한 회복을 말이다. 소애라는 인물로부터, 정오의 연락으로부터, 숙분의 행동으로부터 주인공들은 사라진 사람을 애도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인간애를 느낀다. 물론, 인간애가 가장 깊게 느껴졌던 작품은 만화경이었고, 나머지 두 작품은 희미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사라진 누군가를 잊지 않는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부재를 슬퍼하는 방법도, 이를 이겨내는 방법도 각기 다르지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애도하면서 추억했다. 분명 슬프면서도 상실감이 느껴질 일이지만 다른 무언가를 통해 추억한다. 그게 담담하게 그려졌다. 익숙했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결코 우울한 일이 아님을, 누군가를 잊혀간다는 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님을 소설을 통해 보여 주는 듯했다. 소설 하나하나가 참 사실적으로 와닿았다. 일상속에서 애도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