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의 고전 유람 - 이상한 고전, 더 이상한 과학의 혹하는 만남
곽재식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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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를 덧붙여 놓고 보면 처음 읽을 때와는 사뭇 그 느낌이 달라진다. / p.50

매체에 등장하는 달변가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아무래도 사람이라는 게 자신이 부족하거나 없는 재능을 부러워하기 마련이다 보니 같은 맥락으로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입담에 집중하게 될 때마다 감탄하면서도 동경의 눈빛으로 보게 된다. 성향 자체가 말수뿐만 아니라 말주변도 없는 편이기 때문이다. 말과 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이 책은 곽재식 작가님의 인문학 도서이다. 요즈음 다작이라는 타이틀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데 개인적으로 인문학과 과학 분야에서는 곽재식 작가님의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앤솔로지 단편 소설집으로 작가님의 소설에 입문해서 지난달에는 서양사 관련 인문학 도서를 읽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지점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이번에 한국 고전의 과학과 융합된 인문학 도서의 신간을 알게 되어 고민할 것도 없이 읽게 되었다.

익숙한 작품들부터 다소 생소한 작품들까지 한국 고전의 열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삼국사기와 해객론이 가장 인상 깊었다. 두 이야기 모두 나라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기도 하다. 우선, 삼국사기의 이야기는 여우가 등장하고, 우물이 핏빛으로 물들며, 물고기 사체가 떠오르는 등 흉흉한 소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나라가 망한다는 징조라는 뜻인데 삼국시대 중 가장 먼저 멸망한 백제의 이야기이다. 거북이 주술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바른 말을 했음에도 왕의 심기를 건들여 처형당하는 무술인의 일화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핏빛 바다라는 표현을 토대로 적조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가장 새롭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래도 나름 뉴스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생소했을 법하다. 거기다 적조 현상으로 물고기가 떼죽음당하기도 하기 때문에 삼국사기에서 묘사하는 내용과 일치한다. 아무 정보도 없이 읽었을 때에는 하늘의 뜻으로 멸망 징조라고 느꼈을 텐데 과학적 시각을 더하니 자연재해로서 해석이 되는 게 재미있었다.

해객론은 인간의 한계를 넘고 영생을 찾고자 했던 바다의 손님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 화자인 이광현이라는 인물은 배에 같이 탄 노인으로부터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비법을 묻는다. 노인은 첫 번째로 깨달음을, 두 번째로는 금단대약이라는 불로장생의 약을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금단대약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당시 이광현은 금단대약이라는 약의 존재를 찾아 나선다. 금단대약 제조법도 명쾌하게 나와 있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내용에서 등장하는 연홍이라는 것은 수은과 납을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갑자기 발해가 멸망했던 이유를 금단대약에서 찾는다. 수은과 납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따라 발해인들이 수은과 납에 중독이 되었다는 상상인데 어느 정도 새롭게 느껴졌던 가설이었다. 어디까지나 해객론의 이야기로 꼬리를 물어 하게 된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문종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의 묘약을 준비했었던 첫 번째 왕비, 흔히 사용하고 있는 '직성이 풀린다'라는 문장에서의 직성의 기원, 무술인을 천문학자로 주장했던 박지원의 이야기 등 그동안 역사적 시각이나 문학적인 의미로만 봐왔던 고전이 다른 측면에서 보일 수 있다는 게 너무 흥미로웠다. 거기에 고등학교 수준에 맞게 풀어 있는 내용이다 보니 그렇게 술술 읽혔다. 거기에 분량도 두껍지 않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책을 잡자마자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저자의 책에 늘 나오는 역사, 사회, 과학은 모두 각각의 영역이 아닌 다 연결 고리가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곽재식 작가님을 매체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별명답게 다른 시각으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주시는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소설, 인문학 도서를 읽고 나니 말과 글 모두 감탄을 자아내는 분이었다. 앞으로 곽재식 작가님의 책이라면 믿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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