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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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요리하는가. / p.254

채널을 돌리다 나오는 생활의 달인 또는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프로그램을 나도 모르게 보고 있을 때가 있다.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 무엇이든 일을 하려면 저렇게 미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누가 보면 기술이 없는 일이거나 쓸데없는 행동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방송을 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도 모르게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 하나를 묻는다면 하나를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랑할 수 있는 일 하나 만들기도 힘든데 방송에 나와 자랑하고 다른 이들의 감탄을 내보일 정도면 그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 있을까. 무엇을 하든 폄하하거나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이 책은 김자령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어느 정도 스토리가 머릿속으로 그려지기는 했지만 가볍게 읽고 싶어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특히, 맛집 주방장인 주인공이 훅훅 바뀌는 현대 사회를 어떻게 적응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가는지 그것도 궁금했다.

주인공인 두위광은 중국집 '건담'의 주인장이자 40년 경력의 요리사이다. 화교 출신으로 바닥부터 시작해 유명한 식당에서 거친 능력자이기도 하다. 비록, 현재는 비가 오면 빗물이 새는 낡은 중국집이지만 말이다. 요즈음 감성에 맞게 사진을 찍는 고객들을 향해서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고, 식재료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두위광의 직업 정신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건담 주위에는 라이벌이자 가짜 화교 행세를 하는 곡씨 반점의 곡비소가 있다. 두위광이 가지고 온 식재료와 개발한 음식을 마치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밟아서 뭉갤 법도 한데 두위광은 그저 속으로 화만 낼 뿐 그를 방해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건담의 직원들이 있다. 특유의 넉살과 맥가이버로 활동하고 있는 막내 직원 도본경과 말수 없이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는 강나희, 관악대 출신의 엘리트이지만 뭔가 모자란 모습을 보이는 고창모, 만년 실장 주원신까지. 건담의 위기와 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고민들까지 너무 실감나게 펼쳐져 있다.

처음에는 건담의 위기로 시작해 상승세로 끝나는 이야기를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굴곡이 있는 그래프를 활자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건담의 위기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수시로 왔다갔다 했다. 두위광이 건담을 접고자 했던 것도 생각보다 자주 등장해서 나중에는 건담의 큰 번영을 바라기도 했었다. 두위광의 개인적인 위기부터 시작해 건담을 향한 사람들의 오해와 사건으로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다. 내 감정도 그랬다.

두 가지 이유로 놀랐는데 첫 번째는 두위광의 철학이었다. 두위광은 사람에 따라 아집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고집이 센 인물이다. 나 역시도 초반에는 불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뜻할 때 먹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하거나 이를 강요하다가 오해가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 싶었다. 직원들에게 강요할 때는 흔히 말하는 꼰대의 향기까지 솔솔 풍겼다. 계기를 통해 과감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집이 아닌 이유 있는 고집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장인 정신으로 놀라게 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주변 인물들의 집중력이었다. 도본경은 가정의 환경으로 음식과 가까이 하기는 했지만 양식, 일식을 거쳐 현재는 두위광에게 중식을 배우는 인물이다. 강나희는 알 수 없는 인물이었는데 두 사람을 보면서 한 분야에 깊이 파는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희의 이야기가 그렇게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중식의 기술을 알려 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주원신을 깨닫게 했던 것처럼 나 역시도 도본경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차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강나희는 그저 좋아하는 것을 몰라 방황했던 것일 뿐이었다. 개개인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살린 이야기가 눈을 즐겁게 했다.

인물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저자의 맛깔 나는 음식 묘사로 입이 즐거웠다. 비록, 직접 중국 음식을 먹지는 않았지만 마치 그 음식을 먹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실감 나는 내용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뿐만 아니라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에 대한 질감과 특징도 너무 자세하게 기재가 되어 있어서 요리를 하게 된다면 뭔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백종원 님의 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이연복 셰프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김새와 나이가 두위광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중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 역시도 이연복 셰프님의 식당이 위치한 동네로 알고 있다. 이렇게 상상하면서 읽으니 더욱 실감이 났다.

예전에는 뚝심 있는 한 가지 메뉴에 대한 장인 정신이 있었다면 요즈음은 사진의 중요성이 인식되는 만큼 최신 감성을 장착한 음식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인데 건담이라는 중국집이 있다면 믿고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뚝심 있는 두위광과 열정 넘치는 직원들의 이야기로 읽고 먹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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