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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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삽시다. / p.153

태어나서 사진으로 보았던 이웃이 기억에 남는다. 이웃을 만나게 된 것은 사진첩에서 우연히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면서부터이다. 한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저학년 또래의 빨간 옷을 입은 여자 아이가 보인다. 여자 아이는 한 갓난 아이를 안고 있는데 앞에 유모차가 있기에 안고 있다는 말보다는 갓난 아이를 살짝 잡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남색 지붕이 있는 집 앞에서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 기억에는 없는 사진 한 장. 

사진의 존재에 대해 어머니께 물은 적이 있다. 그 사진의 갓난 아이는 나였다. 어머니께서는 사진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시면서 할아버지와 여자 아이의 안부를 궁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낯선 타지에서 출근한 남편을 기다리면서 내내 갓난 아이를 보는 어머니를 살뜰하게 챙긴 아버지와 같은 분, 여자 아이는 어머니께서 낮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갓난 아이와 놀아 줄 정도로 따뜻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따뜻한 이웃 주민이 있었기에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이다. 여전히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 따스함만은 마음에 오롯이 남은 이웃이다.

이 책은 허지웅 작가님의 이웃에 대한 에세이이다. 지금까지 허지웅 작가님의 에세이를 듣기는 했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심지어 전작이었던 <살고 싶다는 농담>은 집에 있지만 말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께서 부탁해 구매한 작품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만족스럽다고 하셨다. 신간 소식을 접한 이후 거꾸로 읽을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들었던 후기가 있어서 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에세이는 크게 여섯 가지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애정, 상식, 공존, 반추, 성찰, 사유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저자가 보았거나 겪은 이웃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갈수록 사회적인 이야기들로 크게 범위가 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영화 관련 기자를 했었던 이력처럼 영화 속의 내용 또는 보았던 감정을 현재 또는 감정으로 끌고 나와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고시원에서 만난 이웃과의 일화와 사랑에 관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고시원에서 사이가 안 좋은 아저씨가 한 분 계셨다. 트러블이 생기고 말조차도 섞지 않았던 아저씨가 우연히 선풍기를 고치고 있는 저자를 보더니 대신 고쳐 주었다고 한다. 이후로 같이 술까지 하면서 가까워졌다고 하는데 이러한 일화를 통해 사람을 쉽게 판단할 때마다 그 맥가이버 아저씨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한 사이에서 사소한 말다툼으로 떠나보낸 인연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내용은 영화 이창의 이야기와 저자의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창이라는 영화는 모험을 직업으로 하는 기자 남자 친구와 상류층의 여자 친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자 친구는 결혼을 바라고 있고, 남자 친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상들을 함께 나누고 싶지만 드레스를 입고 현장으로 나갈 수 없기에 조금 문제가 생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소에서 여자는 모험 관련 책을 읽다가 남자가 잠에 들자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 잡지를 펼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저자는 "사랑은 두 사람의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삶만큼 넓어지는 일일 겁니다."라는 문장으로 마지막을 맺는데 사랑이라는 게 곧 일방적인 희생은 아니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다양한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로 흐뭇해지다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보면서 분노가 올랐다. 평택항 사건의 이선호 씨와 정인이 사건으로 마음이 아팠다. 사바사바라는 용어의 어원을 들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참 많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느껴졌던 이야기이다. 동시에 옆에 있는 이웃들이었고, 뉴스나 매체를 통해 보는 그들이었다. 살아가는 현실이어서 더욱 답답했던 부분도 있었다.

절망스러운 사회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저자의 따스함은 여전히 느껴졌다. 정인이 사건으로 입양 가족에 대한 시선을 걱정했고, 경비원과 어린이집 교사의 사건에서도 갑질을 하는 이들에게 같이 분노했으며, 니체의 말을 인용해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숨기려고 급급한 종교 사회에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더불어 사는 이웃들을 생각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크게 와닿았다.

작가의 말에서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나도 동참하고 싶다. 책을 덮고 나니 나부터 최소한의 이웃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책을 읽는 독자가 하나둘 늘어나다 보면 사회의 어두운 면도 밝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기대를 잃지 않았기에 따뜻한 시선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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