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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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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쓰레기를 만드는 거죠. / p.208
누군가 일이 많을 때와 일이 없을 때 중 언제가 가장 힘드냐고 묻는다면 의심의 여지도 없이 후자로 대답할 것이다. 물론, 일이 많으면 체력적으로 소모가 가장 크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차라리 몸이 힘든 것이 낫다. 일이 없으면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적으로 힘들고, 심적으로 두 배로 힘들다.
이 책은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아네르스 옌센의 노동에 대한 사회학 도서이다. 가짜 노동이 주는 의미를 알 듯하면서도 아리송해 관심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있지만 과연 가짜 노동은 무엇일까. 거기에 가짜 노동으로부터 오는 번아웃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추후 다시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언젠가 가짜 노동을 경험하기에 미리 준비를 하고 싶어서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가짜 노동이 어떻게 생기기 시작했는지 원인을 파헤치고, 직장인들의 인터뷰로 가짜 노동의 현실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까지 서술한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가짜 노동이 주는 의미는 대략적으로 추측하기는 했었는데 제시된 가짜 노동의 범위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뻘짓뿐만 아니라 결과 성과에 드러나지 않는 노동을 가짜 노동이었다. 책의 내용을 예시로 든다면 이메일을 주고받는 행위와 몇 시간씩 하는 회의를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러한 일들도 업무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의문이 들었다. 관련 기관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업무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과 회의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개인적인 반박을 생각했다. 그러나 읽으면서 이러한 의문은 큰 공감으로 바뀌어서 돌아왔다. 이메일을 작성하고자 의미없는 안부를 주고받는 경우, 회의를 가장한 자신의 성과 드러내기 또는 대표의 훈화 말씀 등이 그랬다. 과거를 돌이켜 보니 매주마다 계획을 가장한 '주말에 있었던 일 발표하기' 시간이 있었고, 거래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내 메일 잘 쓰는 법'을 검색하는 내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비효율적인 일들을 파킨슨의 법칙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이는 업무를 위해 얼마의 시간이 주어지든 그 시간에 맞춰 수행한다는 개념이다. 또한, 같은 업무를 하는 인원이 늘어난다고 해도 일이 늘어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짜 노동을 하게 된 이유로는 기독교 가치관에 따라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죄악시 된 사회를, 블루칼라보다는 화이트칼라의 사무직이 가시적으로 일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관리자들의 수가 많다는 점을 들었다.
가짜 노동에 대한 다양한 이들의 경험담이 나오지만 가장 크게 공감이 되었던 일화는 키르스텐이라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매년 상당한 시간을 쏟는 일이 하나 있다고 한다. 경영진을 위한 연례 보고서를 만드는 일인데 저자들에게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이 놀라 쓰레기냐고 되묻자 아무도 읽지 않기에 전년도에 만들었던 보고서 200 부가 아직 지하에 처박혀 있다고 덧붙인다. 매년마다 소식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동료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 내용 자체가 하나하나 너무 공감이 되어 마치 재미있는 만화를 읽듯이 끅끅 웃으면서 읽었다.
덴마크 등 서양의 직장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로 넘어오게 된다면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보니 크게 차이는 없었다. 특히, 이들도 업무 회의를 가장한 대표의 자랑을 듣고 있었고, 관리자의 눈치를 보느라 퇴근하지 못하였으며, 세상 쓸데없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짜 노동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지만 이는 조금 한계가 보였다. 눈치 보지 말고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 애초에 흔히 말하는 칼퇴근이 가능한 직장이라고 해도 오전에 업무가 끝났다고 오후에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될까. 경영진과 관리자들에 대한 방법도 제시가 되기는 했지만 너무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처럼 보였다.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상사 몰래 인터넷 쇼핑을 해 본 사람이라면 큰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학 도서라고 해서 어려운 용어로 노동을 설명한 책은 아니기에 이해하기에도 수월했다. 비록, 아쉬운 점을 언급했지만 가짜 노동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 목적이 아니라면 크게 신경을 쓸 부분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책을 좋아하는 주변 직장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