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여관 미아키스
후루우치 가즈에 지음, 전경아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과 우리의 불가사의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p.12

요즈음 표지 디자인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책을 많이 읽는다면 그려지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특히, 고전보다는 현대 소설을 많이 읽는 독자라면 더욱 뚜렷하게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떠오르는 책 제목은 몰라도 그림은 안다. 얼마 전 우연히 서점을 방문했는데 온통 건물들 그림이 보여서 하나의 트렌드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기기도 했다.

아무래도 표지를 보고 책을 선정하는 것보다 주변 지인들의 추천 또는 독서모임 선정 도서, 책 문체를 찾아서 고르는 스타일이다 보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표지를 보고 내용을 상상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귀신이 씌인 것처럼 표지를 보고 고르게 될 때가 종종 있다. 확신의 계획형 인간이어서 이미 제목을 선정하거나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뛰어넘어 그냥 표지만 보고 손이 먼저 나가는 경우. 스스로 행동하면서도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후루우치 가즈에의 연작 소설이다. 표지만 보고 손이 먼저 나가는 케이스이다. 사실 표지에 보이는 사람 모습을 보고 딱 떠오르는 연예인 하나가 있었다. 그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표지가 묘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매료되어 읽게 되었다. 

소설은 고양이 여관 미아키스를 찾아온 인물 다섯 명의 이야기가 하나씩 실려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배경이 될 수 있는 프롤로그 형식의 짧은 글을 읽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 장르의 재미 위주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프롤로그를 지나 첫 편의 초장을 들었던 생각은 '나라면 이 여관을 이용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내내 등장하는 이야기이지만 고양이 여관 미아키스의 직원과 주인은 그야말로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이상하게 말을 늘여 고객으로 하여금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프론트 직원과 조금은 가볍다고 느낄 수 있는 말투를 구사하는 짐꾼, 신비로운 매력을 주고 있지만 고객보다는 개인 취향에 맞는 음식을 선사하는 요리사까지 말이다. 그에 비해 조금은 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주인 역시도 그렇게 고객의 서비스 마인드가 투철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그저 잘생긴 외모로 고객을 홀리는 게 조금 가산점이 될 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또 다른 사람들인 손님들이 있다. 첫 번째 손님은 부조리함을 쉽게 넘어가라는 회사의 지시를 받고 고민하는 여성, 두 번째 손님은 현실을 회피해 도망치는 남성, 세 번째 손님은 과거의 명성을 잊지 못한 여성, 네 번째 손님은 운동을 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남자 청소년, 다섯 번째 손님은 가족과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은 여성이었다. 그들에게는 조금은 기묘한 상황에서 고양이 여관 미아키스를 발견했다는 점과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는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어떻게 보면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이 조금 묵직하게 다가왔던 이유를 그것 역시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생각했다. 첫 번째는 손님들에게 고민을 해결해 주는 방식이 그동안 읽었던 소설들과 조금 달랐다는 점이다. 과거 읽은 소설들의 방법을 생각하면 신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상대방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던 것 같다. 아예 상대방이 고민의 답을 제시해 주거나 역질문을 사용해 스스로 깨닫고 나갈 수 있게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불친절하게 깨우치게 한다. 세계 각국의 고양이와 관련된 신화가 곧 고객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맞닿아 있다. 그것도 권선징악의 형태로 말이다. 거의 내쫓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페이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양이 신화가 흥미롭기도 했었고, 고객들한테 막 대하는 모습도 신선했다. 약간 욕쟁이 이야기 할머니의 고양이 여관 같은 느낌이었다.

두 번째는 사회적 이슈들을 소설에 녹였다는 점이다. 프롤로그부터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아동 학대를 꼬집었고, 연예계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와 부조리한 일, 미혼의 연인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 등 어떻게 보면 뉴스나 매체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슈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그것도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소설 내용 자체는 가벼운데 전달해 주는 바는 너무나 무거웠다. 문턱은 낮은데 막상 나오고 보면 머리에 족쇄가 걸린 느낌이라고 할까. 문체와 분위기에 비해 술술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그런 점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다섯 편의 연작 이야기 중에서 마지막 편이 가장 인상 깊었다. 버스가 고장이 나면서 우연히 도착한 고양이 여관 미아키스에서 한 어린 아이를 만난 임산부의 이야기이다.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고, 임신 이후에는 남편과 시댁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버림을 받았다. 거기에 임신 사실을 속였다는 이유를 들어 회사에서도 해고 통보를 했다. 그야말로 세상이 버렸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주인공이었다. 보면서 내내 짠한 마음이 들면서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기분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없었다. 더불어 주위 인물에 대한 적대감도 느꼈다. 출생과 결혼, 임신 모두 축하를 받아야 마땅한 상황인데 말이다. 모든 이야기에 분노 포인트가 하나씩 있었지만 유독 더 크고 묵직하게 다가왔던 이야기이다.

판타지 장르 자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어서 기대 없이 읽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큰 바위가 머리에 남은 느낌이다. 문체부터 내용, 남는 것까지 버릴 수 없다는 점에서 조금은 각별하게 다가온 이야기이다. 미아키스의 주인에게 홀린 손님들처럼 나 역시도 몰입되어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적어도 소설의 여운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을 들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