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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별의 유령들
리버스 솔로몬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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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 p.69
SF 소설의 줄거리는 다양하지만 읽고 난 이후에 바로 드는 생각은 딱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표현을 했는지 감탄하는 경우이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도 작가가 그려놓은 세계관이 너무 눈에 잘 보이는 소설이 있다. 한계가 있다 보니 디테일하게 작가의 세계를 머릿속 지도에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형태는 알아 볼 수 있을 때 주인공이 움직이는 동선과 겪는 사건 하나하나가 드라마처럼 재생된다.
또 다른 하나는 소설의 감정이 오롯이 와닿는 경우이다. 작가가 그려놓은 배경은 이해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내용이어서 머릿속을 때리는 소설도 있다. 아무래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가슴에 와닿는 정도의 현실감이 있는 소설이면 크게 감동을 받는다. 간혹 SF 소설 세계관 중에서 지구의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해서 마치 주인공이 있는 자리에 함께 체험하게 된다.
이 책은 리버스 솔로몬의 장편 소설이다. 아직 SF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기 때문에 가끔은 하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개를 읽다가 관심이 생겼다. 아직 읽지 접하지 못한 옥타비아 버틀러, N.K. 제미신 등 SF 소설을 주도하고 있는 작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라는 게 가장 눈에 띄었고, 줄거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SF 소설이라고 하면 바로 읽기는 하지만 지식에 대한 부담이 늘 따르기 때문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소설을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애스터는 마틸다 호 하층 데크에서 의무관 시오의 조수로 일하고 있다. 상위 데크의 사람인 시오 덕분에 통행증을 받아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경비원들의 감시와 부도덕적인 일을 경험하고 있는 하층민이다. 애스터의 어머니는 애스터가 태어난 날에 자살을 했는데 자매와 다름이 없을 정도로 친한 지젤과 노트를 통해 비밀을 파헤친다. 그러던 중 마틸다 호의 군주가 병에 걸렸으므로 도와 달라는 시오의 부탁을 받게 된다.
처음에 읽으면서 두 가지의 이유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첫 번째는 포커스가 애스터의 어머니가 아닌 애스터에 맞춰져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이기 때문에 주요 사건이 애스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읽기 전에 애스터가 어머니의 비밀을 알아가는 게 하나의 큰 맥락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애스터의 어머니 이야기보다는 애스터가 겪고 있는 현실이 휘몰아쳤다.
두 번째는 마틸다 호의 세계관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스터가 처한 상황과 위치, 사건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묘사되는 마틸다 호의 내부를 상상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애스터가 경비원들에게 부적절한 일을 겪고 있는 모습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하층 데크에서 상층 데크로 넘어가는 공간은 상상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마틸다 호에 그려지는 세계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면서도 디테일해서 능력치가 따라오지 못했다. 읽으면서 부족한 상상력을 탓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 내에 소설을 완독할 수 있었다. 당황스러움과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책을 손에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애스터가 겪고 있는 사건과 배경들이 머리보다는 마음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애스터의 감정 자체가 공감이 되었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고 애스터와 주변 인물들의 다음 행동이 궁금해졌다. 거기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도 집중력에 한몫했다.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영화 설국열차를 생각하면서 읽었다. 신분에 따라 공간이 나누어져 있다는 점이 가장 비슷하기에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다.
애스터가 속한 하층 데크와 시오의 상층 데크는 언어부터 많은 것들이 달랐다. 그래서 애스터가 당한 일들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까지 느꼈다.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일상이었으며, 그들을 인간으로도 보지 않는 듯했다.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인권을 무시당하면서도 애스터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은 그것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읽는 내내 상층 데크의 사람들은 무자비했고 하층 데크의 사람들은 너무나 무기력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권력의 아래에 있는 사람이 도전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말이다.
책을 덮고 나니 현실이 보였다.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도 거대한 마틸다 호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은 많은 것들을 누리면서 살고 있으며, 그러지 못한 자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것도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이런 부분들이 현실감 있게 와닿았기에 애스터가 처한 현실에 무엇보다 크게 공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절대적으로 후자에 속했다. 읽는 내내 마음을 때렸으며, 애스터의 몸에 들어간 제 3의 영혼이 된 듯했다. 소설은 끝이 났지만 여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애스터의 안녕과 미래를 기도하게 되었다. 비록 상상력에 큰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른 의미로 SF 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