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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은 얼마 ㅣ 안전가옥 쇼-트 13
하승민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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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신입니다. / p.8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코인이 동학 개미부터 시작해 투자에 들썩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유독 시들하다는 느낌이 든다. 원래 코인 자체에 관심이 없어서 들을 일이 없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뉴스나 프로그램이나 눈만 뜨면 어쩔 수 없이 보였다. 지금은 코인 이야기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듣게 되는 경우도 시사나 경제보다는 코인을 주제로 했던 한 소설의 리뷰로 자주 보게 된다.
아직도 안정을 가장 크게 고려하는 사람으로서 코인과 투자는 관심이 없다. 살면서 코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는 언급한 소설을 읽었을 때다. 코인의 그래프가 너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코인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아마 당시 리뷰에도 적었던 것 같은데 자본금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하승민 작가님의 코인을 주제로 한 경장편 소설이다. 요즈음 한동안 비소설을 읽다가 주의 환기 차원에서 소설을 읽을 생각을 가지고 고르던 중 안전 가옥 쇼트 시리즈 신간 소식을 듣고 연달아 선택했다. 한 2~3 주 전에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하나인 범유진 작가님의 아홉수 가위를 읽고 만족스러웠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직접 책을 실물로 보고 가지고 있던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 중에 가장 두꺼워서 첫 번째로 당황했고, 단편이 서너 편이 수록되어 있는 다른 시리즈에 비해 하나의 이야기가 경장편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두 번째로 당황했다. 가볍게 시간이 될 때마다 볼 예정이었는데 두께와 종류에 걱정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흥미로운 주제와 이야기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아직 안 읽은 재와 물거품이라는 소설도 하나의 이야기인 경장편 소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환은 과거에 나름 촉망한 청소년이었으나 현재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이다. 매일 치킨집 주인에게 혼나는 게 일상이며, 같이 일하고 있는 이성의 아르바이트생에게 흑심을 품고 있기도 하다. 정환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현기로부터 알 수 없는 거래를 제안받는다. 한 사람을 납치해서 데리고 온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코인 수익의 절반을 주겠다는 은밀한 거래. 정환은 투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어려우면서도 이상한 부탁을 거절한다. 그러나 계속 오르는 코인 투자금과 어두운 현실에 고민하다 결국은 현기의 부탁을 수락한다. 현기가 원하는 사람을 납치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접근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현기와 정환의 코인 투자금은 크게 오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인물이 등장한다. 과거 의사였지만 현재는 코인 사업을 하고 있는 최닥이라는 인물. 정치계의 인물과 접촉해 래더코인에 대해 설명하는 유명 인사이다. 최닥과 접촉하는 인물들은 래더코인에 부정적이거나 의심하기도 하지만 아직 법적으로 구멍이 많다는 점을 노려 합법적으로 조작할 계획을 세운다. 여기에 등장하는 래더코인은 정환과 현기가 투자하고 있는 코인이다.
처음에는 정환이라는 인물에 연민을 느꼈다. 분명히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젊은 청년을 말이다. 거기에 업주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있지만 성실하게 치킨을 튀기고 있는 정환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취업난으로 하루하루 힘든 일상을 보내는 젊은 사람이라면 크게 공감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처음에 느꼈던 감정이었을 뿐이다.
중후반으로 흘러갈수록 이러한 연민은 사라지고 조금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었다. 정환이라는 인물은 열심히 사는 인물이 아닌 패배 의식과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취업에 실패한 이유는 집안 환경과 회사를 다닌 동생 탓이다. 거기에 자신보다 낮은 사람처럼 보이는 이성의 아르바이트생 때문에 명문 기업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나중에 아르바이트생에게 하는 말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올 뻔했다.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그 상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인물들의 감정선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와 별개로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의 현실은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코인과 투자에 큰 관심을 가지고자 하는 시대를 그대로 투영한 것 같다. 오르는 코인 투자금을 보면서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두 인물이 곧 로또 당첨금을 생각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또한, 이미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최닥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의 욕망의 자본주의 모습들에서 더욱 크게 와닿지 않을까 싶다.
만약 등장 인물 중 하나였다면 신에게 되묻게 될 것 같다. 왜 코인으로 희망고문을 하셨는지 말이다. 신에 대한 원망스러움으로 결말을 맞이할 듯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포기하고 치킨을 튀기는 일상을 받아들이면서 살았을 것이라고 울분 터지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쓴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통쾌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설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의 감정이다. 등장 인물에게는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특히, 최닥의 마지막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이 어두우면서도 우울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지만 책을 덮고 나니 무거움이 가득한 소설이었다. 어떤 면으로든 현실과 맞닿아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큰 매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