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듀나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8월
평점 :

정확히 말하면 세쿼이아 생각이 낫지. / p. 45
책을 읽다 보면 작품을 읽지는 않았지만 친밀감이 드는 작가님들이 계신다. 보통 장르 소설 중에서 자주 언급이 되는 분들이신데 고전 일본 추리 소설로 하면 에도가와 란포가, 고전 서양 추리 소설로 하면 애거서 크리스티와 에드가 앨런 포가 될 듯하다. 그 외에도 국내 소설 작가님분들 중에서도 이름만 친숙한 분들이 계신다.
이 책은 듀나 작가님의 미스터리 단편 소설집이다. 한국 SF 장르로 좁히면 듀나 작가님의 내적 친밀도가 올라간다. 지금까지 듀나 작가님의 작품은 본 적이 없지만 SF 작가 인터뷰집이나 주변 SF 소설 매니아들로부터 하나같이 SF 작가 하면 듀나 작가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궁금했던 작가님의 소설을 꼭 읽고 싶었다.
소설은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호흡으로 몰입감을 가지고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원래 단편 소설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착실히 빌드업이 되는 초반부터 추리 소설 특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전개와 범인이 밝혀질 때의 여운까지 적어도 추리 소설 초수인 나에게는 전체적으로 박자가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흔한 밀실 소재부터 단골 주인공인 형사까지 추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 뻔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와 <콩알이를 지켜라>가 가장 인상 깊었다.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는 영화 촬영 중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뒤에 이 내용이 등장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영화 촬영을 위해 한국을 찾은 한 외국 배우의 일기 형식으로 진행이 되고, 처음에는 등장하는 주인공의 특징이나 이야기들이 나온다. 형식 자체도 신선했는데 스치듯 그냥 훅 지나간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무심하게 느껴져서 결말을 알았을 때 조금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물론, 추리 소설 초수인 나의 입장에서 말이다.
<콩알이를 지켜라>는 소재부터가 뭔가 흥미로웠다. 작가인 한 남자의 살인 사건을 토대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보다 주인공 사이의 관계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처음부터 남자를 죽인 살인자가 밝혀지고, 다른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남자의 작품인 '콩알이의 모험'이야기로 시작하다 자연스럽게 시점이 남자의 아내로 바뀐다. 어느 날, 평소 전화를 주던 시간에 연락이 없던 남편에게 묘한 직감을 느끼던 중 여자로부터 전화가 온다. 남편을 살해했다고 말이다. 보통 아내였다면 바로 112에 전화를 해 살인자를 신고했을 텐데 이상하게 여기 등장한 아내는 살인을 은폐하는 일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인다.
보통의 시각과 벗어난 아내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남편과 아내의 사이를 의심했었다. 사이가 좋지 않아 남편을 살해해도 가해자의 편에 서서 이를 도와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 시체 은폐로도 모자라 다른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아내의 은폐 이유가 참으로 독특하다. 내 기준에서는 조금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역시 추리 소설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을 때 더욱 깊이 기억에 각인되는 것 같다.
SF 장르가 아닌 미스터리 장르를 통해 느꼈던 듀나 작가님의 인상은 '대박'이었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다른 장르의 소설인데 알고 있던 정보들을 지우면 SF 작가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작품들이었다. 작가님의 SF 소설에 대한 기대가 생겨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작가님은 다르다는 감탄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