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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 - 유럽 17년 차 디자이너의 일상수집
박찬휘 지음 / 싱긋 / 2022년 7월
평점 :

그렇게 커피는 늘 우리를 돕는다. / p.110
종종 딴생각을 할 때가 있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나 앞에 사람이 있는 순간에는 그러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하고 있는 무언가에 몰입하다가도 주위를 환기시킬 목적인지 아니면 내 머리에서 보내는 위험의 신호인지 생각의 길이 삼천포로 빠진다. 그럴 때는 아, 이제 쉴 타이밍이라는 생각에 조금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디자이너이신 박찬휘 작가님이 에세이이다. 사실 미술에 큰 소질이 없어서 디자이너의 이야기 자체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관심이 갔던 책이었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지식 위주의 책이었다면 그냥 스치고 지나갔을 법한데 일상기록이라는 말이 시선을 끌었던 것 같다. 요즈음 에세이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디자이너의 에세이는 처음 도전해 보는 것이어서 기대가 되었다.
저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큰 자동차 회사에서 17년간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랬기 때문에 내용에서 이탈리아나 독일 등의 다른 나라가 배경일 때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새로움이 느껴져서 좋았다. 여행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묘하게 독일이나 이탈리아에 속해 있는 듯했다. 그 자리에 있다는 생각과는 또 다른 새로운 느낌이었다. 약간 유럽인들 사이에서 그들과 문화를 교류하는 착각이라고 하면 그나마 정확한 감정일 것 같다.
아마도 유럽에서의 문화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에서의 커피에 대한 내용도 실려 있었는데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이탈리아가 커피에 큰 자부심을 보인다는 사실은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프랜차이즈 카페도 이탈리아에서는 기를 못 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커피가 얼마나 유명한지 궁금했는데 커피 자체보다 '카페 소스페소'라는 문화가 더욱 인상 깊었다. 커피를 살 때 원래 값보다 더 많이 지불하는 이탈리아의 문화인데 오후에는 그 돈을 가지고 노숙자나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돈이 부족한 이들에게 준다는 게 참 뭔가 훈훈하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독일에서는 허용치 '톨러런스'를 더욱 엄격하게 잡는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보통 독일 사람이라고 하면 융통성이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약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독일인들은 물건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는 원칙을 고수한다고 한다. 그래서 벤츠 등의 명품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이거 약간의 오차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넘겼겠지만 말이다. 융통성이 꼭 그렇게까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읽는 내내 인상 깊었던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통찰력과 예리함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주된 인물은 저자의 아들이었다. 저자가 대답할 수 없는 예리한 질문을 건네기도 하고, 조금은 엉뚱하다 싶은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면, 이전에 나무 판자로 서핑을 하는 사람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이를 알게 되어 실패를 거듭해 서핑을 하게 되었는지, 자신이 탈 범퍼카의 디자인과 색깔을 보면서 누구보다 진지하게 선택하는 모습들이다. 저자의 아버지께서는 흔한 태극기 그리기 숙제에 누구보다 특별하게 그려서 제출하셨던 내용도 있는데 이를 보면 그러한 통찰력들은 유전이라고 느껴졌다.
복잡함을 싫어하면서도 이를 따라가려는 현대 시대에서 무엇보다 단순함이 필요하다는 내용과 기본에 충실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들은 무엇보다 깊게 공감이 되었다. 디자이너라고 해서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상에서 발견한 주제를 가지고 펼쳐지는 이야기도, 그 안에서 현재를 반성하게 만드는 깊은 고찰도 너무 좋았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