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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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써야 용서받을 수 있단 말인가. / p.71

규율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람으로서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 될 뿐만 아니라 답답함을 느낀다. 사람들 사이에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규칙들을 지키지 못해 피해를 주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꼭 도덕이나 윤리 수준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만큼 나도 뭔가 큰 분노가 올라온다.

이 책은 아쿠마루 가쿠의 장편 소설이다. 띠지에 붙어 있는 문구가 조금 심기가 거슬려서 선택한 책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진정으로 웃을 날이 찾아온다는 말인가. 적어도 나의 가치관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속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기대보다는 조금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읽게 된 책이다.

주인공인 쇼타는 친구와의 술자리를 마신 이후 늦은 시간에 여자 친구에게 문자를 받는다.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지금 보자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당장 오지 않으면 헤어진다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있었다. 차가 끊긴 시간에 택시로도 이동이 가능했겠지만 쇼타는 안일함으로 비 오는 상황에서 차를 끌고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간다. 그러던 중 뭔가를 치었지만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그 자리를 벗어났고 다음 날 뉴스를 통해 자신이 사고를 낸 곳에서 80대 여성이 차에 치어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에서 쇼타는 음주 운전을 해 사람을 죽게 만들었지만 피해자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신의 앞날을 먼저 걱정했다. 치고 도망간 순간에도, 이후 법정에서 섰을 때에도 어떻게든 빠져 나가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가해자 입장에서 피해자 가족의 아픔보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해가 될 것을 먼저 고려했던 쇼타의 행동은 분노를 넘어 어이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다른 독자들에 비해 더욱 감정적인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결국 쇼타는 죄값을 치루고 사회에 나와 어려운 시간들을 보낸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취업이 어렵다거나, 친구로부터 무시를 당한다거나, 그 외 쇼타가 출소 이후 겪는 모든 일들은 솔직히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흔하게 빨간 줄이 그어진다는 게 괜히 있는 말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그것처럼 쇼타 역시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 사이에 집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쇼타 스스로는 더이상 행복해질 권리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특히, 80대 피해자를 죽음에 내몰아 그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내 가치관에 반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과연 가해자는 평생 행복할 권리가 없을까. 죄값을 치룬다는 것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허용된 것인가. 하는 그런 류의 문제들을 말이다. 이게 딱 답이 정해지지 않아서 더욱 깊이 생각했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죄값이라는 게 어디 있겠는가 싶다. 피해자의 남편이 쇼타에게 무언가를 할 계획을 세웠던 것처럼 말이다. 구체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피해자의 아들과 딸 역시도 큰 분노를 가졌을 것이다. 쇼타를 향한 용서 또한 없었을 것이다. 후반부에 딸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살짝 드러난 부분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죽어도 갚을 수 없는 죄이기에 가해자는 행복을 바라면 안 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계속 읽어내려간 것 같다. 소설 문체나 내용 자체는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에 술술 읽혔지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음을 짓눌렀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속죄를 생각하면서 마음의 갈등과 시련, 고난을 경험한다. 각자 저마다의 생각으로 피해자에게 속죄를 한다. 가해자였던 쇼타와 그 주변인들에게까지 동정심이 약간은 들기도 했었다. 과연 나라면 쇼타와 반대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을까, 아니면 나의 가족들을 생각해 쇼타처럼 행동했을까. 이런 생각까지 닿기도 했다.

사실 조금 심심하면서도 소설이기에 가능한 결말이었다. 현실은 그것보다 훨씬 감정적이며, 분노로 가득했을 텐데 말이다. 소설적인 엔딩이었기에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도 결말을 떠나서 사법으로 처벌을 받은 가해자의 죄값, 그리고 속죄는 어떻게 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할 수 없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 그리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소설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인다면 소설을 읽으면서 쇼타에게 동정심이 들기도 했었지만 여전히 가해자에게 속죄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 이벤트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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