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상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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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이라는 것은 끝장을 보려고 들기 마련이다. / p.214

인내심이라는 게 참 무거우면서도 어렵다고 느낀다. 가끔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이성의 끈을 놓게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조카를 보는 중에 책에 먹던 사탕을 떨어트리는 순간들이 그렇다. 다시 냉정함을 찾고 조용히 처리를 하기는 하지만 순간 욱하는 것은 언제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 소설집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인 화차와 솔로몬의 위증이라는 소설의 작가로 익숙하다. 보면서도 나름 인상 깊었던 부분들이 있어서 이 책도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표지부터가 뭔가 몽환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소설들이었다. 또한, 일본의 분위기가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기도 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일본 소설들 중에서는 거의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분위기와 배경들이 잘 와닿았다. 아무래도 시간적 배경 자체가 에도 시대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역사 시간에 배웠던 일본의 풍경들이 잘 그려져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표제작인 <인내상자>는 갑자기 과자점에 일어난 화재가 일어난다. 과자점의 당주는 인내 상자를 찾으러 불길에 들어갔다 목숨을 잃었다. 당주의 외손녀는 어린 나이에 과자점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내상자를 열지 말고 보전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상자를 열게 된다면 재앙이 올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마지막을 덮고 나니 '뭘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인내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무함을 많이 느꼈다. 하다못해 인내상자에 들어 있는 무언가를 알았다면 덜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러한 의문은 편집자의 말을 보고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었다. 완독 후 다시 돌아가서 인내상자를 읽으니 느낌이 달랐다. 아마 그 내용이 없더라면 내내 찝찝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었던 작품은 한 부부와 세 자녀의 이야기를 다룬 <무덤까지>이다. 이치베에 부부에게는 입양한 오노부, 도타로, 오유키라는 세 자녀가 있다. 어느 날, 오유키 앞에 친엄마가 나타나 데리고 가겠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친오빠인 도타로는 양아버지인 이치베에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고, 오유키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다. 고민을 하다가 언니인 오노부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양아버지께 친엄마와 만난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도타로와 오유키 남매, 고민을 들으면서 새로운 비밀을 털어놓는 언니 오노부, 입양한 자녀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이치베에 부부까지 저마다 비밀을 마음에 품고 있다. 솔직히 그렇게 거창한 내용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문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 부분이 조금 신비로우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편집자의 말을 통해 왜 표제작을 맨 처음에 실었는지부터 소설 내용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전해 주는데 이러한 부분이 신의 한 수였다고 느껴졌다.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딱 하고 터트린 느낌이라고 할까. 단순하게 등장 인물의 관계와 배경에만 몰두해 깊은 내용을 찌르지 못해 더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읽어야 된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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