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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별을 볼 때
이혜오 지음 / 책나물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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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속의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 p. 241
학창시절의 나는 온전히 아이돌 덕질로 가득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에 살고 있기에 서울로 올라가 공방을 뛰지는 않았지만 지방 덕후로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하면서 아이돌에게 충성을 다했다. 주기적으로 음반을 사다가 나르기도 했었고, 음악방송은 빠지지 않고 최대한 시청했으며, 라디오는 녹음까지 했었다. 전국에 있는 팬들과 하루종일 문자를 보내며 그들을 찬양하기도 했었는데 문자 한 달에 9000 건이라는 명세서를 본 부모님께서는 철딱서니 하나 없는 딸이라며 크게 혼내시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시 문자 무제한 요금제여서 추가 과금이 없어서 금전적으로 맞을 짓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팬픽이었다. 공부하라고 사 주신 전자사전에 팬픽을 담아서 보기도 했었고, 수업 내용을 필기해야 할 공책에 부족한 글솜씨로 팬픽을 적기도 했었다. 팬픽 소재 자체가 이성도 있기는 했지만 같은 그룹 내의 커플링으로 엮여서 하는 동성 팬팩이 주를 이루다 보니 어디 내보이기도 안 될 금기였기에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스스로 대작가인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 같다.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책은 이혜오 작가님의 아이돌 팬픽과 퀴어를 주제로 한 소설이다. 지금은 RPS를 비롯한 다양한 용어들이 있었지만 당시 팬픽 문화와 연관이 되는 게 팬픽 이반이라는 말이었다. 팬픽을 읽으면서 동성애를 동경하게 되고, 성적 지향의 혼란을 겪는다는 의미이다. 사회 기사로 나올 정도로 꽤 심각한 사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주변 친구들과 팬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추억을 공유했었기에 이에 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친근한 주제여서 관심이 갔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주다인이라는 학생은 아이돌 유니버스라는 그룹의 권이안이라는 멤버를 좋아한다. 또한, 같은 그룹의 멤버인 이호수라는 멤버와 엮은 팬픽을 읽는데, 그들을 주제로 한 4월 이야기라는 팬픽을 보고 빠지게 되어 팬픽 작가에게 방명록을 남기기도 하는 덕후이다. 그러다 같은 학교의 J라는 학생과 이를 계기로 친해지게 된다. 스스럼없는 스킨십으로 주변에서 종종 연애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다인은 J와 유니버스로 가득찬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소설에서는 다인과 J의 행동, 주변 친구들의 반응들이 주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J에 대한 감정들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부분들이 표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듣고도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의심하는 것보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감정에 대한 서술을 보면서 오히려 다인이가 되어 J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에 대해 판단하거나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책 중간마다 있는 4월 이야기의 내용들도 새로웠다. 과거 팬픽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유니버스의 멤버인 권이안과 이수호라는 멤버가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실제로 존재하는 그룹이었다면 그들의 팬픽을 읽지 않았을까. 과거에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의 형상을 상상하면서 읽기는 했지만 코너속의 코너처럼 소설 안에 등장한 팬픽의 내용을 이렇게 읽게 되니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거나 몰입하기에 더욱 수월했다.
다인의 감정선에 따라 읽다 보니 금방 후루룩 읽힐 정도로 재미있었다. 아마 같은 생각을 공유했던 사람들이라면 반갑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선 나부터 아이돌과 팬픽이 전부였던 학창시절로 돌아간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팬픽 자체가 음지 문화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말하기 조금 부끄럽거나 꺼려지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너무 사실적인 묘사나 내용들이 나와서 당황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소설과 내가 팬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만큼 이 소설이 나에게는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추억을 소환하는 여행을 떠났던 시간이었다. 마치 십여 년 정도 전의 중학생으로 날아간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