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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세계
고요한 외 지음 / &(앤드)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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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누구에게나 링이나 마찬가지잖아요. / p.85
0~9까지의 숫자 중에서 하나만 고른다면 2라는 숫자를 가장 좋아한다. 0은 뭔가 허전하고, 1은 너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3~9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다고 느껴진다. 나에게는 2가 가장 안정감이 있는 숫자다. 누군가는 1이 아닌 2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에 무조건 1을 쫓아야 한다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최고의 왕관을 견딜 바에는 그냥 2의 자리에 있고 싶다.
이 책은 2의 세계를 다룬 일곱 편의 단편 소설집이다. 눈에 띄는 작가님이 있어 고르게 되었다. 조수경 작가님의 소설을 인상 깊게 읽기도 했고, 권여름 작가님과 서유미 작가님의 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해외 소설을 읽다 보니 한국 단편 소설집이 읽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2의 숫자가 들어가기도 하고,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2의 세계가 무엇일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일곱 편의 단편 하나하나 기억에 생생할 정도로 재미있었지만 <시험의 미래>와 <코너스툴>, <2차 세계의 최애> 이렇게 세 작품이 인상 깊었다. <시험의 미래>는 시험 점독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점독관이라는 단어를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되어 신선했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 임무이기 때문에 2의 공간에서 혼자 업무를 수행하는데 분위기와 상황 자체가 무겁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점독관과 실수를 용납해서는 안 되는 시험관들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도 이 소설의 묘미여서 긴장감 넘치게 읽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보면 소외가 된 주인공의 마음과 뭐 하나 건지기 위해 초조함을 표현한 문체가 재미있었다. 마지막에 남는 결말 또한 인상 깊었다.
<코너스툴>은 40대의 작가가 아버지와 연이 닿았던 20대의 작가에게 보내는 서신 형식의 소설이다. 40대의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남양주에 있는 코너스툴이라는 서점의 행사에 참여한다. 서점의 주인이었던 한 남자를 만나게 되어 철학이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후 몇 번의 만남을 거쳤으나, 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거기에 남자의 부인과 오해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더이상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작가가 된 딸을 만나게 되었는데, 작가이자 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편지로서 전달한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사연들을 따라 읽어가면서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통하는 지점이 있기는 했으나,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인연이 어긋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2차 세계의 최애>는 아이돌 덕질을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좋아하는 그룹의 쇼케이스 현장에서 초록색 머리를 한 팬을 만난다. 거기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그룹의 최애 이야기를 나누는 등 초록색 머리의 사람과 친해졌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팬에게서 좋아하는 그룹의 2차 세계를 듣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했었던 아이돌 덕질을 주제로 한 내용이어서 공감이 되었다. 또한, 초록색 머리의 팬이 말하는 2차 세계까지 이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었고, 학창시절에 많이 읽었기 때문에 추억도 떠올랐다. 요즈음 RPS라는 단어로 통용이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마 RPS에 호의적인 아이돌 팬이라면 나름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덮으면서 소설에 나온 2의 세계들이 다시 이어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왜 받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는데 작가의 말을 보고 나니 정확해졌다. 특히, 서유미 작가님과 조수경 작가님의 말에서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공감할 수 있었다. 이번 인생도 중요하지만 뭔지 모를 2의 세계가 있다는 메시지가 나에게는 커다란 용기가 되었고, 하나의 희망이었다.
2의 세계는 참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이루지 못할 사랑 이야기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1의 그늘에 가려진 그림자였으며, 두 번째 인생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고, 말 그대로 2의 세계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상상이라는 것을 실천에 옮긴다면 나에게는 그것 또한 2의 세계가 되지 않을까. 2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너무 신선하면서도 신비롭게 다가왔다. 내가 알 수 없었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