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상처받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까 - 불편한 기억 뒤에 숨겨진 진짜 나를 만나다
강현식 지음 / 풀빛 / 2022년 2월
평점 :

당신과 나는 그 누구보다 소중하다. / p.44
세상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작든 크든 상처 하나씩은 받고 살아간다. 나 역시도 말 한 마디에, 행동 하나에, 상처를 받았다. 그것을 계속 떠오를 때도, 이기고자 없던 취미도 만들어서 노력할 때도 있었다. 왜 내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의문이었다. 신이 나타나 내 기억을 도려내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그것은 쉽지 않다.
이 책은 누다심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시는 강현식 심리상담가님의 책이다. 주위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첫사랑과 조금 무거운 주제의 성폭행과 학대,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스라이팅과 펫로스증후군,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오염강박까지 가까우면서도 먼 주제들이 있어 관심이 생겼다. 또한, 나와의 교집합이 있는 부분들도 있어 처음에는 위로를 받고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새롭게 느껴진 부분은 첫사랑과 오염강박,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가스라이팅과 펫로스증후군이었다. 사실 첫사랑은 마음 깊이 간직한다는, 조금은 아름다운 무언가로 묘사가 되어 있기에 극복한다는 생각은 깊게 하지 못했다. 첫사랑의 이별 역시도 하나의 상처였을 텐데 말이다. 특히, 사례를 보면 첫사랑의 아픔으로 비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를 잊지 못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회피하게 되며, 만남이 성사가 되었더라도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용 중에서 의미망모형이라는 심리학 용어와 미숙하기 때문에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오염강박은 요즈음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인해 더욱 심해진 부분이 있어서 관심이 갔다. 오래 자주 씻게 되고, 외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의 결벽증 사례를 보면서 이것 또한 큰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열댓 번 이상 손을 씻을 정도로 과하게 청결을 유지하는 편이기도 하고, 덕분에 늘 거치면서 갈라진 손을 부작용으로 살고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스라이팅과 펫로스증후군은 경험을 했었고, 지금도 상처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에 마음 깊이 와닿게 되었다. 가스라이팅 사례에 나온 민서 씨가 자존감을 잃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과거가 떠올라 읽기가 힘들었다. 나를 성장시키겠다고, 나를 생각한다고, 내 생각과 능력을 무력화시켰던 가시같은 말들. 아마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상사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보다 큰 공감이 될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펫로스증후군은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가족에게도 터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말할 수 있었던 때가 강아지와 있었던 순간이었는데, 하늘로 보내고 나니 잘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감정을 교류했던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해 꽤 오랜 시간을 힘들게 보냈다. 사례를 읽으면서 울컥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이야기가 전부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강아지에게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이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가 되었는데, 조금 이 책을 일찍 만났더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읽으면서 학대에서는 이해하고 용서하는 방법으로, 교통사고에서는 불안과 반대되는 새로운 조건의 조합으로서, 성폭행에서는 주변에 이를 알리는 것 등 심리학 용어에 따라 조금씩 방법과 내용이 다르기는 하나 다양한 사례에서 해결로서 제시된 것은 직면이라고 여겨졌다. 어떤 부분은 직면을 통해 익숙해지기도, 좋은 기억으로 전환시키기도, 상처를 소거시키기도 한다. 불안과 두려움을 회피하지 말고 부딪히라는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사례를 시작으로 심리학 용어나 실험들을 통해 왜 사람들이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기술이 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정서적인 안정과 편안함을 얻고자 선택하게 되었으나, 생각보다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중간중간 실려 있는 저자의 한마디는 상처를 조금이나마 잊게 해 주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과 당신은 소중하다는 말. 그것처럼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물론, 위로가 전체를 관통하지는 않는다.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무조건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굳이 강요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툭 던지는 진정한 한마디와 그것보다 더 확실하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상처가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 '풀빛'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