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 관계, 그 잘 지내기 어려움에 대하여
정지음 지음 / 빅피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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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편해지고 싶은 마음에 나 역시 내가 좀 착해지길 바랐다. / p.19

살면서 나를 진짜 미치게 만드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사람과 나 자신. 전자는 내 신경을 건드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 때문이라면 후자는 내가 계획하거나 목표로 해 둔 일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이다. 자발적으로 미쳤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제목을 보고 내가 미치는 순간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미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와 그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정지음 작가님의 에세이다. 사실 제목을 보고 내용이 궁금했다. 작가가 미치는 순간이 언제인지, 좌측에 적혀 있는 관계와 잘 지내기의 어려움에 대해 무엇을 말할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얼마 전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작가님의 전작을 보면서 필력에 감탄을 했었기에 이번 신작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특히, '경찰서에 만난 죽음'과 '서른 판타지'라는 제목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저자의 생각들에 공감이 되었다. '경찰서에서 만난 죽음'은 경찰서에서 형사가 들고 있는 서류에 있는 시체 사진을 보면서 경찰서에 대한 트라우마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 역시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 편이었는데, 보면서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나름의 안도감이 생겼다.

'서른 판타지'는 '서른인데 정신 차려야지.'라는 말에서부터 시작된 서른에 대한 고찰과 저자에 대한 생각을 담은 내용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른이니까 정신 차리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서 귀에 진물이 나올 정도였는데, 서른이라는 글자를 하나하나 갈기 찢고 싶을 정도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하면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 합의의 탈을 쓴 사회적 판타지가 아닌지 모르겠다.

'스타트업 시궁창 컴퍼니의 세 친구'와 '예비 거지와 백수와 돌싱', '욕설을 버리며' 이야기는 진짜 실실 웃으면서 봤다. 다른 직장을 가더라도 시궁창 컴퍼니의 사장을 기준으로 괜찮은지 정하는 동료분들도, 꿈과 환상의 세계는 수도권 24평형 신축 아파트라고 현실적인 자각을 하는 예비 백수 친구도, 독실한 종교인의 사사로운 걱정 앞에서 찰진 비속어가 아닌 사회성 가득 담은 한마디를 건네는 저자까지. 지극히 평범한 다짐과 일화들을 해학적으로 담는 저자의 필력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아이를 둔 어머니에 대한 비속어에 대한 고찰과 하늘을 떠난 친구에게 적는 편지들은 이 사회에서의 씁쓸한 단면을 느끼게 했고,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이 올라왔다. 프라푸치노를 엎질렀을 뿐인데, 죄인처럼 눈치를 보는 부모님들의 모습에서 과거 나 역시도 아이를 둔 엄마들을 배척하거나 혐오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성찰과 내 친한 친구가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된다면 그 슬픔을 어떻게 느낄 것인지에 대한 마음들이 뒤숭숭하게 얽혔다. 오늘 전할 수도 있는 마음을 내일로 미루는 거야 말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다는 최고의 오만이자 착각 같다는 말이 마음을 후벼파기도 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떠오르는 CM송이 하나 있었다. 情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초코과자 CM송.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로 시작하는 그 노래. 처음에는 다른 점이 많았다고 생각했지만 저자를 미치게 만든 시궁창 컴퍼니의 사장님의 행동이, 욕을 하지 말자는 새해 다짐이, 서른에 대한 생각이, 일상들이, 어쩌면 그와 비슷한 나의 이야기들을 저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는 아마 같은 현재를 살고 있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청춘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몸은 떨어져 있으나, 시간이라는 것은 한 시점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저자와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묘하게 동지애가 생겼다. 저자만의 필력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스스럼없이 꺼낼 줄 아는 저자 덕분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특별하게 미칠 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직설적으로 한마디를 거넨 것은 아니었으나 오늘도 여전히 요지경인 세상과 미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고통받는 이가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 함께 이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을 준 것은 아니었을까.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 '빅 피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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