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안방 문으로 아빠가 옆으로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와불처럼 편안해 보였다. 아빠에겐 어디까지나 아빠 집인 것이다. 누구와 몇 개의 오피스텔을 전전하든 결국 여기로 돌아온다. 엄마가 엄마 집으로, 엄마 몫으로 믿고 있는 여기로 말이다. 집으로 돈을 벌고 성공한 세대라서 엄마 아빠의 어그러진 결혼 생활이 집을 가운데 두고 계속되는 것이겠지만, 재인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아빠와 함께 살던 여자들은 집 없이 버려지는 게 아닐까? 집을 줄 리가 없다. 저 사람이. - P111

형편없음은 다른 종류의 형편없음과 언제나 일맥상통하므로 형편없음에 대한 예방주사는 일찍을수록 좋으리라고 재인은 생각하곤 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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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13절

‘무지개‘는 히브리어 ‘케세트‘로 활을 의미한다. 미드라쉬는 무지개를 ‘전쟁 무기인 활을 뒤집어 벽에 걸어 두신 것‘으로 비유하며, 하나님이 심판을 중단하고 평화를 선언하셨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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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중하는 시간 동안, 상상의 비약을 하는 시간 동안, 작가는 매 순간마다 최소 일곱 개의 단어와 표현과 디테일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지. 재능 있는 작가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올바른 선택을해. 그들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코트 전역에서 슛을 날리는 프로농구 선수와 같아."
어디였더라? 누가 한 말이었더라?
"이런 끊임없는 선별 과정이 문예창작의 기본인데......."
"프랜즌!" 우렁차게 외치며 벌떡 일어나 앉자 두통이 벼락처럼드류의 머리를 관통했다. "프랜즌이 강연한 내용이었어! 토씨 하나까지 거의 똑같아!"
쥐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체했다. "너는 그런 식으로 선별할 능력이 되지만 짧은 순간밖에 유지가 되지 않아. 그래서 장편을 쓰려고 하면(단거리와 마라톤의 차이라 할 수 있겠는데) 항상 그 기능이 고장나지. 여러 표현과 디테일로 이루어진 선택지는 보이는데 선별이 안되기 시작하는 거야. 너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게 아니야. 알맞은 단어를 선택하는 능력이 사라진 거지. 모두 맞아 보이고 모두 틀려보이거든. 아주 슬픈 일이지. 엔진은 강력한데 자동변속기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고 할까." - P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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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그는 비몽사몽의 경지를 헤매며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든 이유가 궁금해질 만큼 통증이 엄청난 상태로 접어들 것이다. 나중에 그는 아내의 이름을 잊어버릴 것이다. 기억하는 건(그마저도 가끔) 어떤 식으로 걸음을 멈추고 서류가방을 떨어뜨리고 드럼의 비트에 맞춰 골반을 흔들기 시작했는지일 테고 그러면 그는 하느님이 세상을 만든 이유가 그 때문인가 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라고. - P190

척은 여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조심만 한다면 아이를 안게 해주겠다고 어머니는 약속했다. 그는 당연히 부모님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95번 고속도로 고가 위에 낀 얼음으로 인해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흘러, 대학생 시절에 그는 여자친구에게 주인공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는 소설, 영화나 드라마는 많지만 실제로 그런 사고를 겪은 경우는 자신밖에 본적이 없다고 얘기하게 될 것이다. - P191

남자는 영화에서 유령이 그렇듯 점점 희미해지지 않았다.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처럼 그냥 사라졌다.
없었던 사람 맞아. 척은 생각했다. 나는 그를 없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갈 거야. 나는 훌륭하고 훌륭할 자격이 있고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그는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갔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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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살날이 9개월밖에 안 남았지만 그는 아직 그걸 모른다. 종말의 씨앗(삶이 마지막 한 점으로 좁아지는 지점)이 의사의 메스가 닿을수 없는 곳에 깊게 심겨졌고 최근 들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조만간 거기서 검은 열매가 열릴 것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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