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 머릿속에는 ‘체력‘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내 몸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베이스캠프이자, 중요한 무기이고, 오랫동안 함께 가야 하는 동반이라는 인식 자체가 부재했다. 여전히 처음 명명한 사람에게 꿀밤을 주고 싶은 ‘꿀벅지‘가 유행하면서는 양상이 좀 바뀌었다. 보기 좋게 근육이 붙은 몸이 아름다움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체중 조절=여자의 자기 관리‘라는 도식은 이제 ‘보기 좋은 몸을 위한 운동=여자의 자기 관리‘로 바뀌었다. 꾸준히 운동을 했다. 이제 밥을 굶고 유산소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뭔가 찜찜했다. 최근 여자의 체력에 대한 담론들이 분수처럼 샘솟으면서 내가느낀 미심쩍은 기분의 정체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운동을 하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빼고 있던 밑장. ‘잘‘ 살아낼 수 있는 연료이자 밑바탕인 ‘체력’, 드디어 진짜가 운동 담론의 링에 오른 것이다. - P134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여성과 어머니를 이분화하고, 어머니‘만은‘ 강한 존재로 신성화하여 착취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다. 앞서 이야기했던 어린이를 다루는 어머니의 체력과 근력은 이런 맥락에서 악용되기도 한다. ‘모성‘이 체력이라는 근거 없는 환상. 그러나 틀렸다. 한 글자도 안 맞는다. 나는 어머니가 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나는 강해질 수 있다. 강해지고 싶다. 나는 내 몫의 노동을 감당하고 타인을 착취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 P85
그 덕분에 친구는 추가 체력이 필요한 순간 "내가 이러려고 운동했나보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대사에서 유비무환의 멋을, 비축분이 있는 자의 여유를 느꼈다. 각자의 삶에서 ‘이러려고‘는 서로 다른 형태와 상황과 강도와 질감으로 출몰할 것이다. 현실에는 고정 지출 비용 같은 기초대사량 외에도, 급전처럼 급하게 체력을 당겨써야 하는 변수가 포진해 있다. 작은 컵으로 한 번씩 뜰 때는 충분한 물이라도 갑자기 바가지로 연달아 퍼내야 할 때 금방 바닥을 긁으면 곤란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금방 포기하거나 짜증을 냈다. 이제는 내 체력의 곳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생각하고, 내 몸을 들여다보고, 예측하고, 설계하고, 움직인다. 물론 나는 끈기 있거나 부지런하지 않아서 깨달은 뒤에도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그러나 달팽이 같은 속도에 가시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지속하려는 시도와, 체력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 P136
여자들은 운동을 하면서도 근육질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운동하는 여성이 아름답다면서 근육이 두드러진 여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근육은 애덤 스미스 같은 존재여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 아니, 보이지 않는 근육! 빌트인 냉장고처럼 안에 있지만 절대 모양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 P150
연애 감정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 구성되는 것이다. 사랑은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발동되는 "부호화된 감상"일 수 있다. 문화는 감정 경험을 조직화하고 해석하는 틀이다. 우리 사회의 높은 연애 농도는 어떤 관계든 조금만 친밀하거나 만남이 잦으면 금방 로맨틱하게 버무려버린다. PT는 상대적으로 연애 감정이 싹트기 쉬운 배경에서 유사 연애를 판매하고 수용한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재미로만 즐긴다면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적어도 운동을 하러 온 공간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분리와 구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접촉이나 친근한 대화는 운동을 위한 것이지 ‘그린 라이트‘가 아니라는 인지와 본업에 충실한 태도 말이다. 여성 회원이 웃으면서 대화를 다받아주는 이유는 일대일로 운동 배우는 상황에서 어색해지기싫어서일 확률이 크고, 트레이너가 새벽의 카톡을 받아주는것은 업무의 연장이며, 회원님들은 운동을 배우러 왔지 인터뷰하러 온 게 아니니 사적인 질문은 적당히 하자? - P155
# 운동은 금메달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P163
에이 씨, 진짜. 싸늘해진 얼굴로 검색창을 내린다. 운동복을 판매하는 페이지에 가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상품 사진은 대부분 ‘S라인‘을 강조하고, 운동복의 기능보다 모델을 성적으로 연출하는데 집중한다. 한껏 엉덩이를 뒤틀고 가슴을 강조한 포즈만 있을 뿐 어디에도 스트레칭을 할 때 옷이 어디까지 딸려 올라가는지, 통기성은 어떤지, 격렬한 운동을 할 때 옷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같은 정보는 없다. "남성은 중량 위주의 운동을 하기때문에 옷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여성은 라인을 위해 운동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몸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야한다"라고 온 세상이 소리치는 듯하다. 여자의 운동을 언제나 ‘몸매 관리‘ 관점에서 접근하면 심미적 기능에만 치중하거나, 기능적 목적을 성애화한다. 전자는 디자인과 ‘라인‘을 강조하는 광고에서, 후자는 딱 붙거나 짧은 운동복을 관음하는 시선에서 드러난다. - P224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여성 예술가 모임 ‘게릴라 걸스’는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나?"라는 문구로 유명하다. 이들의 운동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근대 미술 부문에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은 5%인데 이 미술관에 걸린 누드화의 85%는 여성을 소재로 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비율은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관음과 물화의 대상으로 소비하는데 익숙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 P229
혼자 사는 것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쉽게 사라지는 일이다. 필요한 만큼 나를 세상과 이어 붙이고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으면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잊혀진다. 결혼은 제도와 혈연으로 그러한 수고를 의무와 일상으로 만든다. 나는 부단히 노력해서 내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챙겨야 한다. 나는 나를 잘 돌보며 살고자 운동하고, 내 상태를 민감하게 살피고, 내게 좋은 것을 골라 먹여야 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나의 비참한 미래를 예언한다. 그건 발화자의 소망이기도 하다. 감히 결혼하지 않고 사는 내가 불행하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과 다른 형태의 행복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 남편이나 남자친구는 여자를 보호하는 울타리이자 유일한 보루라는 낡은 믿음에서는 시들고 작은 냄새가 난다. 고독하게 죽을까 봐 결혼하라니, 먼 미래 나의 안위를 위해타인을 저당 잡는 일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의문스럽다. 게다가 환상과 달리 결혼은 안전과 행복만을 약속하지 않는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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