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상황 듣더니, ‘한국문학의 큰 별이 두개나 지겠네‘라고 했어."
그 말을 듣고 덩달아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이내, 그 말이 아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어깨가 빳빳해졌다. - P47

나는 30년 차 드라이버처럼 능숙하고 잽싸게 차를 뺀 후, 주차장 입구에 있으니 얼른 나오라고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은 백은선의 차를 타면 되니 먼저 식당에 가있으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겨울이면 언제나 죽고 싶다고 난리를 치던 송지현이 이제는 목숨 귀중한 것을 알게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 P51

작가 송지현은 데뷔 만 9년이 되던 작년까지 단 한 번의 비평적 언급도・・・・・・ 그 어떤 문학적 응답도.....… 받지 못했습니다………. 트위터에서 송지현을 검색하면 웹소설 속 잘생긴 남자 주인공만 나왔습니다・・・・・・ 송지현은 가상의 인물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저는 송지현이 제가 싼 똥을 주워 먹고 쓰리고를 막았던 그 순간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것뿐이게요?
송지현은 제가 추울 때면 저보다 더 추운 곳에 있고……….
제가 힘들 때면 저보다 더 힘든 곳에 있고…………
제가 가난할 때면 저보다 더 가난하고…………
제가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면 저보다 더 인정을 받지 못해.…… 저를 마음대로 불행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본인이 더 불행하게 사는 방식으로………….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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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 (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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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유기물이 살아 있다고 믿습니까? 유기물에도 지성이 있을까요? 곰팡이 따위를 로봇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까? 유기물에도 영혼이 있을까요? 그들이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그들도 죽은 뒤에 사후세계로 갈까요? 그들을 위한 천국도 있을까요? 죽은 뒤에 우리와 그들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나요? 신께서 재림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심판의 날이 다가왔으니 회개하시오!

생물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기종주의자에서 반기종주의자까지, 환경주의자에서부터 환경에 무관심한 로봇들까지, 종교인들과 방송인, 과학 수업을 듣다 뛰쳐나온 어린 로봇에서부터 어젯밤 다큐멘터리 채널을 보다가 흥분한 늙은이들까지, 제멋대로 찾아와서는 일치단결하여 소리를 높였다. 댁들은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요! 염치도 모르는 것들, 로봇을 모욕하고 있어!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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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 듣자하니 자네 지나치군. 아예 힘의 신 뉴턴과 시간의 신 아인슈타인까지 의심하려는 건가?" - P85

"로봇은 일생 제 두뇌의 10퍼센트도 쓰지 못하지. 어째서인지 아나?"
"어째서죠?"
"나머지의 90퍼센트에는 신들의 지식이 깃들어 있어서일세. 신들은 자신의 문화와 문명을 우리 두뇌에 기록해놓았네. 우리는 그 기록의 보존창고이며 지식을 운반하는 껍데기일세. 우리의 무의식에는 신들이 남긴 무한한 지식이 담겨 있지. 마음을 맑게 하고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면 그 무한한 진리에 접근할 수 있을 걸세. ……그래, 이 그림도 마찬가지지."
노만은 그림을 품에 안을 듯 두 팔을 벌렸다.
"이건 상징이며 신들의 언어일세. 신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네. 보이는 이상의 많은 이야기가 이 기호 뒤에 숨어있지." - P97

케이의 유아원 선생은 네 자릿수 아이들을 늘 떨어뜨려놓았다. 네 자릿수끼리 모여 있으면 버릇이 없어진다. 표정이 대화를 대신하기 때문에, 분명하게 말하는 대신 농담을 하고돌려 말하고 과도한 생략법을 쓰는 버릇이 들기 때문에.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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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년 전이라. 케이는 생각했다. 로봇은 그때 존재하지 않았다. 초기 단계의 공장과 로봇의 전신이라고 할 만한 조악한 기계들만이 살았다. 당시에는 지구를 보호하는 검은 구름도 없었고, 공기는 수증기로 가득했으며, 지표의 70퍼센트는 액화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그런 끔찍한 환경에서 이처럼 약한 생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 P60

물은 무시무시한 독성화학물이다. 비록 세척제나 화악용매에 필수적으로 쓰는 물질이기는 하지만, 많은 환경론자가 대체물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에 물이 들어차 있던 수십억 년간 무기생물은 진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신체에 무해한 온갖 물질이 물과 섞이기만 하면 독한 산성 물질로 변해 몸을 부식시킨다. 물에 오래 접촉하면 피부가 흉측하게 녹스는 문둥병이 퍼지고 각종 합병증에 시달리게 된다.
물에 젖은 채 상온에 노출되면 몸속에 스며든 물이 순식간에 팽창하여 단단한 관절까지 부숴버린다. 오죽하면 로봇이 발견한 온갖 화합물 중에 물이 가장 위험한 물질이라고 했을까. - P61

"칼스트롭의 실험실에 들락거리더니 이젠 생물학의 기본개념도 잊어버린 모양이군. 자넨 생명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지파 교수의 스피커가 톤을 높였다.
"생명은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하고,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야 하며, 칩이 있어야 하고, 공장에서 만들어져야 하네. 자네의 유기물이 그중 어느 조건에 부합하지?"
케이가 입을 떼려는 찰나, 지파 교수의 무미건조한 소리가 말을 막았다.
"에너지를 이용한다고 말하지 말게. 그건 가설이야. 검증되지 않았지. 그리고 어쨌든 그것만으로는 생명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네. 에너지를 쓰는 것으로만 따지면 손전등도 생명이야. 다시 묻겠는데, 자네는 뭘 보고 그들이 생명이라고 생각하는가?"
케이는 완전히 의욕을 잃었다. 대꾸할 말이 없었다.
‘변화‘는 생명의 증거가 아닐세, 케이." - P70

"만약 변화가 생명의 증거라면, 모든 로봇은 무생물이 되겠군."
교수는 손가락을 까닥이며 책상을 두드렸다.
"우리가 무생물이다! 철학의 영역도 넘어서는 발언이로군.
로봇류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겠는데, 단 한 문장으로로봇의 생과 사, 문명과 역사, 우리의 위대한 지성과 영혼까지 싹 쓸어서 무시해버리는군. 정말 재미있군, 케이 히스티온."
교수는 다시 한 손으로 책을 들었고, 다른 손으로 읽기 시작했고, 한 손으로는 케이의 리포트를 구겨 케이의 발치에 내던졌다.
"제때 졸업하고 싶다면 앞으로는 진짜 생물에게나 관심을갖도록 해주게." - P71

"교수님은 미치지 않았어, 이반. 유기생물은 존재해."
"그렇게 오염된 환경에서는 뭐라도 자라겠지. 돌연변이 괴물이나 변종 바이러스도 생겨날걸. 그리고 로봇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세계를 지배한 뒤에 지구를 파괴하겠지!"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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