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좋고, 어진 사람이 되는것도 좋지만, 저는 정말이지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논어』에서 공자님은 ‘지‘나 ‘인’이 ‘용’에 우선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고, 저 역시 일견 동감하는 바이지만, 그래도 공자님이 21세기 한국에서 임산부로 환생한다면 생각이 바뀌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사, 오늘의 편지를 마무리하며 소리 높여 외쳐봅니다. 우리에게는 군자비추, 공자에게는 임신강추. - P167

이렇게 어떤 마음과 마음을 장난스레 이어붙여 세상이 가끔씩 툭툭 던지는 유쾌한 농담들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왕이면 선하고 어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계속 꾸게 만들어요. 그래서 누가 오해받기 쉬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왜 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술은 언제나 저를 조금 허술하게 만드는데, 허술한 사람에게 세상이 좀더 농담을 잘 던져서 그렇다고요.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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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느끼는 고통에 대해 충분히 말하고 귀 기울이며 서로에게 ‘고통의 곁’이 되어주어야 개별적 슬픔이 모여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말을 믿으면서도, 상담 선생님께 힘든 마음을 털어놓다가 이런 시기에 갇히 고통이라는 단어의 주어 자리에 제가 잠깐이라도 앉는 게 가당키나 한지 부끄러움이 몰려와 갑자기 상담을 끊기도 합니다. - P100

이 일로 걱정의 목적어가 되는 건 고통의 주어일 때보다 몇 배 더 무언가를 훔쳐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래도 될까?‘라는, 슬픔 속에서 어떤 유의 당위나 윤리를 가늠하려는 감정들이야말로 제가 이 커다란 비극의 중심에서 실질적으로는 거리가 먼, ‘바깥에 있는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가 유가족이었을 때 느꼈던 슬픔은 가늠의 여지조차 없는 슬픔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어요.
바깥의 사람이라는 이 거리는 온전한 공감을 불가능하게 하겠지만, 이 거리가 가능하게 해주는 일을 하나씩 찾는게 애도의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퍼만 하는 시간에서 벗어나서요. - P101

"오늘 너한테 처음으로 절해봤어. 처음 주는 꽃이 국화라서 진짜 미안해" - P102

프로이트가 그랬다죠. 정상적인 애도란 상실한 대상을 잊고 그 대상에 투사한 리비도를 거두어들여 다른 대상에 전이함으로써 애도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일정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고 감정적 애착이 단절되지 않는 애도는 실패한 애도(우울증)라고요.
하지만 제게는 이런 프로이트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이 언제나 더 와닿습니다. 애도에 완성이나 종결은 없고 그것은 평생 지속되는 것이며, 애도는 실패함으로써 완성되는것이라는, 애도는 실패해야(그것도 잘 실패해야) 성공하는 것이라고 한 말을요. - P103

프로이트의 애도가 고인의 타자성을 지워버리는 ‘망각의 애도‘라면, 데리다의 애도는 고인의 타자성을 내 안에 기억으로 보존하는 ‘기억의 애도‘일 텐데요. 몇 번의 죽음들을 겪으면서, 저는 데리다의 저말은 ‘이해한다‘의 영역이 아니라 ‘(모르고 싶어도) 알아진다’의 영역에 들어가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슬픔은, 그리고 기억은, 아무리 없애고 싶어도 박혀 있는 것이니까요, 가시처럼.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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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제 말 속에서 얄짤없이 ‘얄‘ 자를 없애고, ‘얄’ 뒤에 숨어 있던 미움과 대면하면서, 미움을 미움 그대로 받아들여야 그 미움을 비로소 해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동안 충분히 해소될 수도 있던 미움들이 ‘얄‘자에 막혀 오히려 쌓여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미워할 용기는 미워하지 - P44

않을 용기, 나아가 사랑할 용기의 시작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물론 미움을 꼭 버려야 할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갖고 있으면 있는 만큼 저의 에너지와 감정을 소진시키는 건 분명하니까요. 꼭 품어야 할 미움만을 정확하게 골라내고 나머지는 계속 버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요. - P45

축구장에는 경기를 하러든 보러든 더 자주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오타를 발견해내고 더 많은 실수를 웃어넘기기를, 그래서 저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는 사이 혼비씨는 분명 휴식계의 대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거예요.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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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기생물학자가 이에 대해 기묘한 가설을 발표했다.
그 식물들은 자신의 절대적인 적대자이자 포식자에게 제 몸을영양으로 제공하고, 대신 자신과 자손을 돌보고 널리 번식시켜달라는 맹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약을 한 뒤 몸 대부분을 먹이로 치환하는 극단적인 신체 개조를 감행했다. 그 종자들이 결국 대량 멸종의 시대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번성하여 지금껏 전한다는 것이다. 서로 결코 공존할수 없는 이들이 공진화한 방식이었다. 투쟁이나 다름없는 공생이었다.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많은 유기생물학 가설 중에서도 가장 신비주의적인 가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 P282

・・・・ 명령에 따르지 말라‘는 명령에 지배되는 로봇은 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마음속에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권력을 가장 현명하게 쓰는 방법은 권력을 내려놓는 것이다. 반드시 현명한 자가 권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오직 현명한 자만이 권력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 P301

"유기생물학에서는 매순간 변화하는 개체를 한 개체로 인식하기 위한 방정식을 만드느라 머리를 싸매는 줄 압니다만, 애초에 접근 방향이 틀렸어요. 유기생물은 변화하는 파동의 연결성과 관계성 어딘가에 잠시 머무는 환상입니다."
아연이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자부심을 또렷이 내비치며 말했다. 마치 세실처럼.
"그러니 그분들에게는 지금이 전부며 이 순간의 기적이 전부입니다." - P303

파동 사이의 환상, 그럴지도 모르지. 존재나 실체라기에는 너무나 변화무쌍하고 허망한 것이니.
케이는 문득 제 마음을 살폈다. 그 안에 자리잡은 인간을 향한 애틋함을 생각했다. 신성함, 경외감, 숭배하는 마음이 깨끗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자리잡은 연민을 그 종이 내게 어떤 강제도 할 수 없고 이 마음에 한 점의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고, 내가 그들로부터 이 자아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한 뒤에야 비로소 이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만약 내 마음이 여전히 그들에게 종속되어 있었다면, 숭앙과 경애의 사슬에 노예처럼 사로잡혀 있었다면, 나는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았으리라. 끝끝내 저항했으리라.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걸고 투쟁했으리라. 생명으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 ‘자아‘를 지키기 위하여.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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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로봇이 여행할 수 있는 한계는 공장의 유사성이 이어지는 선까지다. 어느 범위를 벗어나면 충전선이나 배터리는 물론 전압마저도 맞지 않는다. 그 차이가 로봇의 영역을 나눈다. 하지만 뭐 어떠랴. 수명이 줄기밖에 더 할까. - P224

모든 가전제품이 인간을 만났다. 신성을 체험했다. 전부 의지를 잃고 사물로 전락했을 것이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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